[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52. 13:14-27. "또 다른 징조"

2023. 8. 30. 16:15마가복음강해

13장은 성전 붕괴와 관련된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5~13절에서 예수님은 앞으로 일어날 여러 일들에 당황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목숨이 걸린 재판을 받을 때조차도 드디어 성전이 종말을 맞이하겠구나 하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즉 마지막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14절에 와서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지금까지는 꿋꿋하게 견디라고 했지만, 이제는 신호만 오면 도망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망갈 때를 알려 주는 어떤 일이 일어나면, 돌아보거나 물건을 챙길 틈도 없이 도망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재난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3: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가는 모호한 말로 본문을 시작하고는 “읽는 사람은 깨달아라”라고 덧붙입니다. 이는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자신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말고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성경적 암시들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난의 징조는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본문의 배후에는 다니엘 11:31과 12:11이 있는데, 거기 보면 이방 군대가 예루살렘을 점령해서 성전에서 드리는 정기적인 희생 제사를 멈추게 하고 대신에 “멸망의 가증한 것”을 그곳에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참 하나님 대신 다른 신의 형상인 이방 우상이 성전 중앙에 세워진다는 말처럼 들립니다. 그럴 때는 끈질기게 버틸 때가 아니라 도망갈 때임을 알라는 표시란 것입니다.

 15~20절까지 예수님은 환난에 대처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십니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 재난이 70년에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글에서 예루살렘 포위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이 자기 자식을 잡아먹고, 더러운 음식 찌꺼기와 약간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서로 싸우고 죽이고, 로마 군대 손에 죽은 유대인보다 같은 유대인 손에 죽은 유대인들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망가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잘못된 애국심으로 그 끔직한 사건의 현장에 있었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4명의 황제가 바뀌는 어수선한 틈을 타서 예루살렘성을 나와서 요단강 건너 펠라라는 조그마한 읍내로 피신하여 무사했다고 합니다. 1차 유대전쟁에서 약 109만 명이 죽고 9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 재난을 예수님이 예고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13:21-23, “그 때에 어떤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항상 전쟁이 나고 재난이 있는 어수선한 시기에는 신흥종교가 탄생한다고 합니다. 즉 사기꾼들이 많은 사람들을 현혹을 시킨다고 합니다. 실제로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를 보면 66~70년의 1차 유대전쟁 때 소위 메시아와 예언자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추종자들을 얻으려고 표적과 기사를 약속하며 구원을 제시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쟁기간 동안 네로를 시작하여 오토, 비텔리우스, 베스파시아누스까지 네 명의 황제가 바뀌면서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황제의 관을 쓰러 가는 동안 그의 양자인 티투스장군이 예루살렘성을 파괴하고 수많은 유대인들을 십자가에 매달았다고 합니다.

 13:24-25,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본문은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 재난의 징조가 세상의 종말, 즉 우주적 종말이라면 그토록 정신없이 도망가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은 이사야 13:10, 34:4를 인용한 것으로, 원래 바벨론과 에돔의 몰락을 묘사하는 데 사용했던 예언의 언어였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말하는 종말은 그들이 속한 세상의 종말이었습니다. 자기 사람들에게는 불의하고 외인들에게는 혁명의 폭력을 휘두름으로써 이 세상의 빛이 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지 못한 그들 삶의 방식의 종말이었던 것입니다.

 13:26,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때에 그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본문은 다니엘 7:13절을 인용한 것입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다니엘 7장에서 이 말은 ‘인자’의 오심이 아니라, 그가 고난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은 이 장면을 땅의 관점이 아니라 하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인자’라는 존재는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간다”. 그는 고난 후에 신원을 받고 땅으로부터 하늘로 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승리와 인정에 대한 말씀이요,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분의 복음에 대항한 제도가 받을 심판에 대한 말씀이며, 시편 110편에서 다윗의 주가 하듯이 이스라엘의 대변자가 하나님 우편에 앉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재난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원래 성전이 마땅히 대변했어야 했던 일을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자들이 온 세상으로 나가서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 그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40년 후에 성취된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으로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2천 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 사회와 제도가 복음과 그 기준에 맞서고, 그럼으로써 교만하고 비인격적인 구조와 심각한 불의와 근본적인 억압이 양산한다면, 다시 한번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고발하고 경고하며 하나님의 백성에게 도망가라고 할 날이 올지도 모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서 그런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