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과 마가복음강해]#50. 12:35-44. "과부의 헌금"

2023. 8. 28. 16:18마가복음강해

 

지금까지는 유대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질의를 했다면 이번에는 예수님이 서기관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메시아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 마당에서의 마지막 장면으로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던지신 어려운 질문과 헌금함 앞에서 일어난 작지만 놀라운 사건을 보여주는 내용입니다.

 12: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세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사이에는 메시아에 대한 대망론이 팽배해 있었다고 합니다. 곧 다윗의 후손 메시아가 오셔서 이방 세력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주권을 되찾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들의 글에는 유대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메시아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계신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분은 고난의 종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유대 선생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결론을 내린 것은 다윗 같은 정치적 영웅이 온다고 한 것입니다. 결국 유대 선생들은 메시아를 정치적인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메시아를 철저히 인간화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틀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2:36-37,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예수님은 시편 110:1에 나오는 다윗의 시를 인용하십니다. 시편 110편은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승천과 온 세상의 주 되심을 이야기할 때 매우 중요하게 다룬 본문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이 그 시편을 직접 썼다고 보고, 거기서 다윗이 “내 주”라는 어떤 대상을 언급한다는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다시 말해, 다윗보다 어린 누군가가 아니라 분명 다윗보다 연장자인 누군가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예수님이 여기서 하시려는 말씀은 이런 것 같습니다. 이 시편의 관점에서 메시아를 이해한다면, 그가 물론 다윗의 자손이기도 하지만 또한 다윗이 마땅히 주라 부를 만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마가는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성전의 왕의 권위를 행사하시는 메시아다.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참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분은 다윗의 자손이자 다윗의 주로서 이 모든 일을 하신다고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구현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이 시편에서 이미 예고되었다고 보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용하신 구절 이후에 나오는 이 시편의 내용을 보면 오실 왕 혹은 주를 영원한 제사장으로 봅니다. 따라서 이 본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때부터 이미 배후에서 진행되던 어떤 일과 14장에서 예수님이 가야바와 직면하실 때 전면으로 드러날 어떤 일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대한 권위, 즉 하나님의 심판을 성전에 선포할 권리를 주장하십니다. 단지 예언자로서가 아니라 왕으로서, 그런데 그냥 왕으로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살아 있는 구현으로서 그 권위를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가복음 전체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12:38-40,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일부 율법학자들의 과장과 허세를 짤막하게 경고하십니다. 그들은 경건한 사람들로 알려졌고 스스로 제법 그럴듯한 티를 내고 다녔지만, 사실은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마가가 본문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예수님은 그런 명성이나 부를 얻으려 하시지 않고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내어주는 것을 어느 과부가 자기가 가진 전부를 헌금함에 넣는 것으로 비유하십니다.

 12:42-44,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자기 생명을 주는 것, 이것이 본문의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성전 헌금함에 많은 돈을 넣을 수 있고 또 그것을 사람들에게 과시하려 드는 부자와, 그날 자신의 전 재산인 두 렙돈을 넣어 말 그대로 자신의 ‘생명 전체’를 드린 가난한 과부를 비교하십니다. 과부의 헌금은 비록 금액은 적었지만 전적인 희생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도 다윗의 주와 다윗의 자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둘 사이에 특이한 연관성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과부가 ‘그저’ 동전 두 닢을 넣는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넣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그저’, 다윗의 자손, 즉 평범한 인간 왕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메시아를 통해 자신을 다 주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전 존재와 소유를 아낌없이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마가는 지금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평가하기에 견유학자, 또는 현자, 가르치는 선생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다윗이 주라고 부른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하고 해석을 하면 마가가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의 전 존재와 소유를 아낌없이 주셨던 분, 즉 성자 하나님이란 사실입니다. 이 시간 나는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