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48. 12:18-27. "부활 논쟁"

2023. 8. 24. 15:30마가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사두개인들과의 부활 논쟁입니다. 유대의 제사장 귀족 계급인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신학적으로나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위험한 새로운 사상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세오경에서 부활을 이야기하지 않았고, 부활 사상은, 아주 후대에 쓰인 다니엘서 같은 책에 의존하는 사상이고, 바리새파 같은 집단의 추측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들은 부활 신앙을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하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그 사상은 특히 주전 2세기 혁명 운동가에 널리 퍼졌는데, 순교자는 죽음 직후에는 아니지만 궁극적 부활에서 새 육체를 입을 때 영광스러운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확신을 사람들에게 심어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신념은 하나님이 이 세상의 창조주이시며 따라서 재창조도 하신다는 생각에 기초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함해서 이 세상과 자신의 죽은 몸까지도 재창조하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대범하고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고 생각했고, 그러므로 부유한 지배 계급은 자신들의 권력과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그런 사상을 품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입니다.

 12:18-19,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이 위험하고 혁명적인 바리새인들과 같은 편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에게 고대 유대 율법(신 25:5-10)에 근거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일곱 형제를 예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20-23절). 그것은 어떤 남자가 결혼해서 자식 없이 죽었다면 그 동생이 과부로 남은 형수와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형의 자녀로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가계가 끊이지 않고 유산도 상속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는 그런 일이 한 여자에게 일곱 번이나 생긴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이런 예가 바로 부활은 말도 안 되는 사상이라는 증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즉 모두가 부활하면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 아내이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12:24-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본문은 성경에서 인간이 천사가 된다고 유추하게 하는 유일한 본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실제로 인간이 천사가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부활은 단순히 전과 같은 몸 상태로 살아 돌아오는 소생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육체를 입는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은 천사들이 사는 ‘하늘’이라는 비물질 상태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문은 죽은 후에 하늘나라에 가서 천사들처럼 육체가 없는 영혼으로 산다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해석은 이 본문이나 부활에 대한 신약성경의 일반적인 가르침이 뜻하는 바가 아닙니다. 유대교의 부활 교리의 핵심은, 부활이 새로운 육체를 입은 삶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하나님의 백성이 '죽음 이후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건 간에 그 이후에 오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 누리게 될 삶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이 부활하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다”라는 말은, 사람이 육체 없는 상태를 포함해서 모든 면에서 천사와 같다는 뜻이 아닙니다. 결혼하지 않는다는 딱 한 가지 면에서만 천사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기 때문에 종을 번식하거나 대를 이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야 한다는 율법의 목적은 바로 대를 잇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런 것이 상관없는 새로운 육체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부활에 대한 첫째 요점입니다. 예수님이 확신하시는 부활은 현 인간성의 모든 양상을 단순히 재생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 알아 볼 수 있고 육체를 입은 인간의 상태이겠지만, 상당한 변화도 거칠 것입니다. 정확히 어떤 상태일지는 지금의 우리로서는 추측만 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모세오경의 핵심 본문을 하나 찾아서 죽은 사람이 정말로 부활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으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요점입니다.

 12:26-27,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여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본문 또한 오해하기 쉬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살아 있고 그들의 현 상태가 ‘부활’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아직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의 요점은, 그들이 지금은 ‘죽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으로 보아, 미래에 하나님이 그들을 죽음에서 살리실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부활’은 ‘죽은 상태’를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음의 역전이며, 하나님의 새 세상에서 인생을 누릴 새로운 육체를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믿는 것은 궁극적 미레에 대한 최상의 희망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것을 새롭게 만드실 것이라는 새 창조에 대한 기대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부활 사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