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가복음강해]#46. 12:1-12. "소작인 비유"

2023. 8. 22. 17:39마가복음강해

 

4장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들려주신 비유의 말씀은 다양한 땅에 떨어진 다양한 씨앗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거기에는 그에 상응하는 긴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다양한 실패 단계를 거쳐 결국에는 성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한 무더기의 씨앗이 실패하고 또 다른 무더기도 실패하고 하다가, 드디어 수확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비슷한 상황이 전개될 듯한 비유가 나오는데, 결말은 전혀 다릅니다. 한 종을 보내고 그다음 종과 또 그다음 종도 보내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사자를 보내자 그가 수확을 받아 위풍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고 맙니다. 이야기는 비극으로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12:1, “예수께서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지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이 비유에는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즉 다시 집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사야의 유명한 주제인 이사야 5:1-7을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장에서는 사랑의 노래라고 이름 붙인 시를 하나 썼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포도원처럼 심으시고 돌보시며 좋은 포도가 맺히기를 기대하셨는데 결국에는 야생 포도가 맺히고 말았다는 내용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지극한 돌봄에도 불구하고 변질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심판밖에 없습니다. 포도원은 무너지고, 들짐승 차지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원래 그들을 부르신 그분의 목적을 끈질기게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끔찍한 이야기의 내용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이사야 5장의 이야기를 약간 다르게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포도원 주인이시고, 이스라엘은 포도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이야기 안에 당시의 많은 유대인이 품고 있었을 생각을 하나 엮어 넣으십니다. 하나님이 멀리서 예언자를 통해 자기 백성을 부르시면서, 이스라엘이 그 부름에 순종하여 드디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백성이 되는 때를 간절히 기다리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백성은 예언자들을 거의 다 거절했고, 이스라엘은 고집스레 자기 길을 갔던 것입니다. 이제 드디어 하나님이, 예언자와 같은 일을 하지만 예언자보다 더 큰 분을 보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마가의 독자들은 이 말의 의미를 알 것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요, 인자입니다. 세례 받으실 때 그 표지를 받았고, 변모 때 그것을 확인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아들도 거절하고 죽일 것이라는 것이 본문의 내용인 것입니다(2~8절).

 12:10-11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놀랍도다 함을 읽어 보지도 못하셨느냐 하시니라”본문은 시편 118:22-23을 인용한 것입니다. 유대교 절기에 자주 사용되던 이 시편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현존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내용입니다. 이 시편은 건물 다른 곳에는 전혀 맞지 않고 모퉁이나 아치 꼭대기에 놓는 갓돌로 꼭 필요했던 그 돌이 이 성전 건물의 영광이라고 언급하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오셔서 하시려는 일은 다른 종류의 건물에는 맞지 않았고, 나름의 관심사가 있는 ‘건축자’들, 즉 권력과 명망에 집착하는 대제사장들은 분명 그것을 버릴 것입니다. 그들이 어떻게든 예수님을 없애려고 힘쓰는 것도 당연할 것입니다. 마가는 이 이야기를 사용해서 성전에서 예수님이 하신 행동을 그분의 체포와 재판과 죽음으로까지 연결하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12:12,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하여 예수를 두고 가니라”세상의 빛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이스라엘은 그 빛을 안쪽으로만 비추어서 자신의 청결과 배타성에 대한 의식을 고양시키고 열방들을 어둠 속에 그대로 머물게 하도록 하기 위하여 스스로 건물들로 둘러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원하는 모든 유대인들은 참된 이스라엘이 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발견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름으로서 그들은 마침내 참된 이스라엘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무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는 데 동의를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제사장 일행들이 두려워했던 무리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예수님은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한층 더 의미 있는 설명을 덧붙이기 위해 이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하신 행동은 에레미아와 다른 위대한 예언자들의 행동처럼 이스라엘에 대한 강력한 경고였지만, 그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교회 밖 세상에 예언자적인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을 포도원으로 심으신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온 세상을 풍요로운 정원으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적 소명을 따른 사람들은 종종 애쓴 보람도 없이 고난 받고 죽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산다고 해서 희극 속 인물이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오히려 비극처럼 느껴질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여전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건축자들이 어떤 돌을 버린다면, 때로는 그것이 갓돌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갓돌인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