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05. 24:45-51. "지혜로운 종과 악한 종"

2022. 12. 27. 16:55마태복음강해

 

고대 유대교 전통에서는 잠언이라는 책을 일상생활에서 많이 적용했다고 합니다. 잠언은 주로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을 대조하는 내용이 자세히 나옵니다. 물론 궁극적으로 보면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이는 사람이고,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이러한 지혜 전통은 구약 시대 이후에도 유대교에서 계속 발전했고, 야고보서 같은 책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 기독교까지도 이어졌습니다. 마태복음에서도 이러한 예를 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바위 위에 집을 지었고, 어리석은 건축자는 모래 위에 지었다고 7:24-27에서 말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오늘본문 말씀에서 이러한 지혜 전통에 호소하시면서 말씀을 하시는 내용입니다.

 24:45-46,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우리는 마태복음에서 몇 차례 보았듯이 당시 사회에서 주인과 종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임무를 주고 떠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오실 때 이스라엘이 한 일을 보고 하나님은 판결을 하신다는 것으로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예수님이 올리브산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 하나의 의미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할 일을 주고 떠나실 것입니다. 그것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4:14). 그러면 그들은 어떻게 그 책임을 이행할 것인가에 대한 판결은 판이하게 다르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24:48-49,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맡음을 받은 종이 다른 종을 때린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종은 다 같은 종이 아닐까? 늘 깨어서 자기가 할 일을 한 종과 자기 일을 망각하고 그 반대로 행한 두 종과의 차이는 단지 선함과 악함, 순종과 불순종이 아닙니다. 그들의 차이는 지혜와 어리석음의 차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고 잠언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잠언의 이런 문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을 읽는 첫 독자들 또한 이 잠언 말씀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도 그들의 지혜와 어리석음이 다양한 방식으로 그 모습이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지혜’와 ‘어리석음’의 요점은 어떤 상황에서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느 때건 문을 두드릴 수 있다면, 지혜란 늘 준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 나라를 이 세상에 임하게 하셨다면, 지혜로운지 어리석은지는 지금이 하나님의 시간표에서 어느 때인지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렸다는 말씀입니다.

 24:50-51,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태는 지금 예수님이 오심과 함께 언제든지 하나님의 판결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은 어떤 판결을 받을까? 물론 이 판결은 예수님을 믿고 안 믿고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판결일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언제든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고 즉시 바로잡는 젓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율법의 정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 계명을 주셨을까를 깨닫고 그 율법의 정신대로 살아가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우리들의 삶인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실패하면 베드로처럼 깨닫고 바로 잡으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산에 등산을 할 때 중간쯤에서 넘어진다고 해서 다시 산 밑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진 그 자리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0번 넘어지면 11번 일어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을 환영하시며 우리가 실패했다가 정신을 차리면 언제든 용서하시는 예수님은, 깨어 있고 충성하라는 힘들고도 차원 높은 요구도 하십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께 구원이라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많이 받은 것만큼 우리들에게는 많은 책임과 사명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28:19-20).

 이 시간 나는 나의 책임과 사명을 다 하고 있는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