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29. 11:53ㆍ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앞의 종들에 대한 비유보다 더 자세하게 지혜와 어리석음을 대조시키는 유대인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열 처녀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본문을 그 당시 마태복음을 처음 대하는 첫 독자의 눈높이로 읽어야만 올바른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5:1-2, “그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잠언에서는 지혜와 어리석음을 두 여인으로 표현하여, 그들이 지나가는 남자들을 부르며 자신의 생활 방식을 권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지혜와 어리석음을 각기 다섯 명의 처녀들로 분장하여 사람들에게 어느 편을 택할지 졀정하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비유하고 있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결혼식 광경입니다. 유대인들은 약혼 후 약 1 년 후 거행되는 결혼식은 주로 저녁에 베풀어지는데, 신랑은 친구들과 함께 신부 집으로 가서 신부를 데려오게 된다고 합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열 처녀는 신부의 들러리였는데 신부가 신랑을 만나도록 준비시키는 역할을 맡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신랑이 저녁이 아닌 밤중이나 새벽녘에 갑자기 와서 신부들러리들을 당황케 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이야기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풀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25:3-4,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본문에서 기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중점을 두면 본문을 해석을 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그것이 선한 행실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하고, 믿음이나 사랑이라는 주장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체 맥락에서 보면 이 이야기는 중요한 순간에 대비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신랑이 더디 오므로 신부 들러리들은 다 졸며 자고 있는데 신랑이 밤중에 갑자기 왔다고 말씀하십니다(5-6절).
25:8-9,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본문에서 요점은 기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고 준비되어야 하고, 지혜로워야 하며, 앞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머지않아 위기의 때가 올 것을 깨닫고 지금부터 준비해서 그때까지 잘 지키지 않으면 후회하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위기의 때는 무엇일까? 그 당시 독자들은 그것이 유대전쟁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25:10-11,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시편에서는 신랑이 오는 것을 노래하는 찬송 시들이 많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신랑으로 언급하셨습니다(9:15). 또한 앞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는 왕이 자기 아들을 위해 여는 결혼 잔치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22:2). 그러므로 본문에서 신랑을 언급하는 것은 다시 한번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이런 암시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신 이후도 계속해서 논쟁의 핵심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5:12-13,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나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태복음은 미래의 기독교 성도들을 위하여 쓰여진 책이 아니라 1 세기 예수님을 따르는 유대 공동체를 위하여 쓰여진 책이란 것입니다. 그 책의 목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임을 알리는 책이란 것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해석하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을 단지 종말의 때, 이 세상과 교회가 아직 기다리고 있는 위대하고 끔찍한 때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공생애 내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메시아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들이 바로 결혼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을 예수님을 알고 그분의 오심을 깨어 기다리는 지혜로운 사람과, 마지막 때에 예수님이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실 어리석은 사람들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훗날 교회에 주는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에게 주는 도전인 산상수훈처럼, 그 당시 첫 독자의 눈높이로 가장 기본적인 의미대로 읽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지고 오신 하나님 나라에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 또한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이 살던 그 시대처럼 우리 또한 태만해지기 쉽고, 하나님의 일과 그 요구에 충실하기가 쉽지 않으며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올 때 준비가 안 되어 있기 쉽기에 우리들은 여전히 경고가 필요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인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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