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3. 20:55ㆍ마태복음강해
헤롯 가문은 로마와 함께 세상 권세를 대표하는 한 축이였습니다. 그 가문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복음을 전하니 당연히 예수님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헤롯 대왕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지만 실패했습니다(2:13-18). 그런데 이제 분봉왕 헤롯이 이야기의 중반쯤에 갑자기 나타납니다. 마태는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일까?
14:1-2, “그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당시 유대 지역의 왕은 대리 통치인으로써 그 임명과 폐위는 전적으로 로마 제국의 권한에 달려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헤롯 대왕과 사마리아인의 아내 마타케 사이에 난 헤롯 안타파스였습니다. 그가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팽배한 부활 사상을 믿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는 세례 요한을 죽인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14:3-4,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요한은 하나님 나라가 오고 있다고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오실 왕을 위해 그들을 준비시키면서 예수님이 오실 길을 정비했던 예언자였습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서 헤롯은 유대인의 진짜 왕, 즉 메시아가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은 도덕적으로 너무 엉망이어서 메시아라고 아예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로마에 있던 동생 빌립 집에 머물다가 헤로디아와 불륜관계를 맺고 살로메와 함께 유대로 데리고 왔습니다. 살아있는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는 것은 모세의 법을 어기는 일이었으며(레 18:16), 이를 위해 아무 이유 없이 부인을 내보내었던 것입니다. 헤롯이 자기 남동생의 아내를 빼앗아서 치른 결혼을 요한이 힐책한 데는 그런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단지 간음한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행동은 그가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일리 없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었습니다.
14:5,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무리가 그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그들을 두려워하더니”헤롯은 요한을 죽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릴리 지역은 폭동이 자주 일어난 지역이었습니다. 군중들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고 있었는데 만약에 요한을 죽이면 폭동이 일어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은 피정복지의 폭동에 굉장히 민감했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폭동이 일어나면 그 책임을 지고 분봉왕에서 물러날 수도 있다는 것을 헤롯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헤롯이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추어서 기쁘게 했다는 이유로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맹세를 합니다(6-7절)
14:7-8, “그가 제 어머니의 시킴을 듣고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 때문에 주라 명하고”해롯은 권력을 탐했고 요한은 그의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헤롯은 여자도 탐했습니다. 이미 동생의 아내도 빼앗은 터에, 이제는 동생의 딸을 보고 흥분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헤롯을 이 모녀는 손쉽게 조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원래 교만한데다가 술에 취했으니, 두 여자는 헤롯을 부추겨 만용을 부리게 할 수 있었고, 결국 그는 마음에도 없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헤롯의 여러 약점이 함께 작용하여 결국 요한은 죽었습니다. 악인에게 일어날 일을 왕과 백성에게 경고했던 예언자가 그들이 당할 일을 몸소 당한 것입니다. 마태는 지금 복음서 중간에 이정표를 하나 세웠습니다. 앞서간 예언자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그 뒤를 따르는 사람도 이런 일을 당할 것이라고 미리 예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처럼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처럼 정권에 도전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에야 명확해지고 분명해지는 수수께끼 같은 말로, 요한보다는 은밀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협은 진작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단지 탄생 때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계획이 자신들의 계획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람은 사실상 헤롯뿐만 아니라 그 배후에 있는 권력, 즉 로마 황제의 권력에도 도전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헤롯은 예수님을 부활한 요한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예수님이 그런 놀라운 일들을 행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 부활을 가리키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전조이지 부활의 결과는 아닙니다. 그리고 부활했다고 해서 요한이 예수님으로 바뀌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이 또 다른 어떤 사람으로 바뀌는 것도 아닙니다. 부활은 예수님께 생명을 줄 것이고, 헤롯과 로마 황제의 권세를 넘어서는 왕국을 줄 것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줄 것입니다(28:18).
본문의 헤롯과 요한과 춤추는 소녀에 대한 이 안타까운 짧은 이야기는 예수님의 생애가 가지는 의미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우리는 어떤 악에 대항하도록 부름 받았는가? 그렇게 대항할 때 어떤 위협을 받게 될 것인가? 우리가 삶에서 막아서지 않고 그냥 자라도록 방치하는 작은 약점들은 무엇인가? 그러한 약점들이 자라서 언젠가는 진짜 악을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과 남을 파괴할 기회를 노리며 우리 안에 잠복하고 있는 헤롯과 같은 성격들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할 수 있다면, 예수님이 왜 그 외로운 광야를 지나 결국에는 인간의 악이 지닌 무게를 몸소 다 지실 수밖에 없었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어떤 영적전쟁을 치르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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