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15. 21:17ㆍ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사복음서에 다 나오는 오병이어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마태는 마태복음을 통해서 예수를 따르는 유대인 공동체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14:13-14,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우리는 우선 예수님의 심정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앞 절에서 요한의 제자들에게 요한의 죽음에 대한 말을 들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사촌이자 동료였던 것입니다. 또한 요한의 죽음은 분명 예수님이 앞으로 당할 일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빈 들”에서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소식을 안 무리가 예수님 주변으로 몰려들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슬픔을 승화시키고 오히려 무리들을 항한 사랑으로 바꾸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눈에 보이는 이적과 기적은 먼저 내적에서의 아픔을 승화시키는 능력, 즉 성령의 역사함에서 오는 것이라고 마태는 말하고 싶은 것일까? 예수님이 보여주신 자신의 슬픈 감정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향한 사랑으로 바꾸신 것이 바로 그러한 내적 능력의 역사가 아닐까. 이것이 성령 사역인 것입니다.
14: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우리는 제자들의 심정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제자들도 요한의 죽음을 예수님과 같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 또한 예수님의 슬픈 마음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스승은 자신의 슬픈 감정을 뒤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도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면 제자들의 내면에는 어떤 불같은 감동이 일어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도 돕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이렇게 다 굶을 게 아니라 사람들을 보내서 무엇이라도 먹게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예수님에게 건의한 것입니다.
14:16-17,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의 무리에 대한 섬김의 마음을 간파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주변의 누군가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는 모습을 보실 때 언제나 기뻐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생각에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놀라운 일을 하시는 때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네가 정말로 그들을 생각한다면, 네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명의 전형적인 형태가 아닐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을 돌볼 수 있을까 하고 제시한 작은 의견이 엄청나고 불가능해 보이는 제안으로 다시 돌아오면 우리들은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시간도 없고, 힘도 없고, 능력도 안 된다는 핑계를 됩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것이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4:18-19,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먹기에도 부족할 정도로 보잘것없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가까이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자신도 도울 방법을 찾을 때,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마태는 말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즉 엉겹걸에 우리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내놓는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의 의견, 빵과 물고기, 돈, 시간, 재능, 사랑, 예술 감각, 언어감각, 손재주 등,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져가신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아버지 앞에 기도하시고 축복하신다. 그다음에 그것을 떼어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라고 우리에게 돌려주신다. 보잘것없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모아서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은 그것을 가지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우리는 그것을 경이롭게 바라본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기독교적 섬김의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마태의 이야기에는 기독교적 소명의 놀라운 예를 보여 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남은 열두 바구니(20절)는 어 쩌면 하나님의 백성, 즉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회복시키려는 의도를 보여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람들을 먹이신 사건은 예수님을 새로운 모세로 보고자 하는 마태의 주제와 잘 들어맞는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오는 특별한 빵인 만나를 주셨습니다. 마태는 분명 독자들이 그 사실을 간파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예수님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남아서 예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모세와의 유사성은 사라집니다. 예수님은 거대한 무리를 이끌고 그 지역을 행진할 마음이 없었고, 하나님의 적들과 싸워 군사적 승리를 얻어 낼 생각도 없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외로이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연민에 동참해야 한다는, 예수님이 사용하실 수 있도록 자신이 것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그런 부름이 느껴진다면, 예수님도 자신의 모든 것을 대가로 치르셨음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내가 가진 것 중에 무엇을 내어놓아야 할 게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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