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0. 14. 16:54ㆍ마태복음강해
예수님 당시의 많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보내 주실 거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 왕이 이스라엘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결국 이 세상에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운동의 선봉에 설 거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름 부 음 받은 왕이 언제 어디서 태어날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가 다윗 왕의 후손일 거라고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에 대해 놀라운 약속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태가 2장에서 인용한 미가서 5:1-3의 예언을, 오실 왕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다는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기름 부음 받은 왕’은 히브리어든 아람어든 유대인의 언어에서는, 우리가 보통 ‘메시아’라고 발음하는 그 단어로 표현했습니다.
메시아는 어떤 존재일까? 메시아가 왔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론은 많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메시아는 이방인 무리를 패배시키고 이스라엘에 자유를 안겨 주는 전사 같은 왕일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또한 메시아는 성전을 정화하고 진정한 예배를 확립시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오실 왕은 분명 이스라엘의 성경을 성취하실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이루실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분명하게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주후 1세기에는 자칭 메시아가 더러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메시아가 나타날 때면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랐지만, 그가 정부에 잡히고 나면 곧 흩어졌다고 합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메시아로 알려지면 정부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는데, 그 관심은 결코 호의적이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읽으면 이해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16: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우리는 우선 빌립보 가이사라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이곳은 갈릴리 벳세다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곳으로 혈몬산 기슭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지중해에 있는 가이사랴와 구별하기 위하여 빌립보를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헤롯 안티파스의 영토에서 벗어나 있었고 갈릴리 바다에서 족히 이틀을 걸어가야 했던 곳입니다. 예수님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제자들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한 제자들의 대답은,
16: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에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제자들의 대답에서 당시에 예수님은 대체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이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온유하신 예수님, 온순하고 상냥하신 분’으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을 따뜻하게 위로하는 친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앞장서서 악하고 완고한 왕에게 거침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고대의 혹은 근래의 예언자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예수님은 예언자 같은 존재였던 것입니다. 그저 ‘미래의 일을 앞서 말하는 존재’가 아니라, 권력 쥔 자들의 불의와 사악함에 대항하는 하나님의 대언자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에 제자들을 대표해서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16: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물어보신 것일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알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 입에서 ‘메시아’라는 소리를 직접 듣고 싶은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의 대언자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아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당시의 악한 지도자들에게 전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지도자들을 대체할 하나님이 보내신 왕이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을 흡족하게 하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이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실 왕이 인간인 동시에 신일 것이라는 생각이 아직은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하신 일과 말씀 때문에 제자들은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한 혼란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이 예수님이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유일하신 하나님과 친밀하셨다는 사실을 믿고 나서야 해결되었습니다. 우리들 또한 삼위일체론이 많은 진통을 겪으면서 4세기에 들어서 확립이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본문은 구약 성경을 인용한 것으로, 그 표현은 왕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삼하 7:14, 시 2:7). 그러므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말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이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분이시고, 시편과 예언자들이 말한 하나님의 선택받은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대답에 예수님은 승인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6:1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베드로’는 아람어로는 ‘게바’입니다. 이 이름의 뜻은 ‘바위’ 혹은 ‘돌’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불렀다면, 예수님은 그러한 충성심을 가진 베드로가 예수님이 짓고 계신 새로운 건물의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그가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거라는 의미로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신 것처럼(창 17:5). 예수님은 시몬에게 베드로, 즉 바위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바위 위에 집을 짓는 지혜로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처럼(7:24), 이제는 베드로라는 바위 위에 그 일을 하실 거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럼 바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산상수훈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우리는 시온산 이라는 바위 투성이 고지대에 지어진 위대한 도성, 예루살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당시 일부 유대교 전통에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소로 보았고, 지하 세계의 문들이 있는 곳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금 하나님의 세계의 이 중심부를 자신이 재건축하고 있다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그 선언이 지금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선언과 함께 시작되고 있다고 마태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멀리 떨어진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선언을 하시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지금은 이 사실을 철저히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정부에서 안다면 이는 왕권에 도전하는 행위이므로 헤롯왕이나 그리고 더 위로는 로마 황제에게 반역을 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가 정말로 하나님의 메시아라는 베드로의 선언에 동의하는 사람에게는 이 약속이 주어질 것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이러한 충성심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바로잡으실 것이고, 그리하여 하늘과 땅에 정의와 평화가 실현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하늘과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가 실현 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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