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73. 16:21-28.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시다"

2022. 10. 17. 20:30마태복음강해

 

조금 전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름부으신 왕, 즉 메시아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다음 단계는 당연히 같이 머리를 맞대고 전략을 짜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예수님이 왕이라면, 그리고 제자들이 바위 위에 지은 집과 같다면, 현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과 제사장들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했을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행진해 가면서 지지자들을 끌어 모으고, 적당한 순간을 택하여 하나님께 의뢰하는 기도를 드리고 기습 공격을 해서 성전을 차지하고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생각과는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난다고 말씀하십니다(21절). 이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항변합니다(22절). 이에 대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고 나무라십니다.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이 왜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셨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17절에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바요나 시몬아”라고 부르신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바요나 시몬은 요한의 아들이라는 문자적인 뜻이 있지만 그 당시 “바요나”는 열심당원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즉 베드로는 열심당원이었던 것입니다. 열심당원들은 무력으로써 로마에게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해방을 추구하는 집단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많은 분파 중에서 가장 호전적인 분파였습니다. 이들은 1차 유대전쟁 때 예루살렘이 함락되고도 3년 동안 헤롯 대왕이 지은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항쟁하였던 자들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에서는 신병훈련소를 수료하면 마사다 요새를 견학한다고 할 만큼 이스라엘에게는 민족적 자존심을 상징하는 곳입니다. 또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갈릴리가 열심당원들의 본거지였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갈릴리 출신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3년 동안이라 같이 다니면서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왜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셨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13:12,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가는 과정이 신앙의 성장인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어떠한 형식으로든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모든 사람에게 주는 중요한 경고입니다. 위대한 약속과 사명을 받은 베드로가 동시에 가장 엄한 꾸지람도 받았다는 것입니다.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려면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 자기 부인일 것입니다. 즉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야망, 꿈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2:20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에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한번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앞에 가고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정말로 이렇게 하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될 것입니다.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이런 믿음을 턱 맡김의 믿음이라 합니다. 케에르케고로는 믿음은 깊은 바다에서 자신의 몸을 뛰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믿음은 철저한 신뢰에서 나오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없으면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항상 걱정과 염려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이 순조로울 때는 신앙생활을 잘하다고 고난이 닥쳐오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믿음이 바로 ‘턱 맡김’의 믿음일 것입니다.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그 당시 사람들처럼 예수님이 인정받으실 때를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건은 이미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변함이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본문 말씀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일에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바치면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본문 말씀대로 한 번 살아보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바쳤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