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82. 19:1-9. "이혼에 관하여"

2022. 11. 15. 13:41마태복음강해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가까운 곳으로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이 이혼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한 내용과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9: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이곳은 요단 강 동쪽이며 베레아라고 알려진 곳입니다. 이곳은 헤롯 안티파스가 통치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왜 바리새인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에게 이혼 문제에 대해서 질문을 했을까? 세례 요한은 해롯 안티파스가 아내와 이혼하고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재혼한 것을 비난했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도 이와 비슷한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을 것입니다.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예수님 당시에도 이혼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 또 재혼을 하면서 이것은 율법에 근거한 것이며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이혼하는 것을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당시 이혼 문제를 두고서 유대교 안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에 있던 샴마이파에서는 자유로운 이혼을 반대하고 간음한 경우에만 이혼을 허락한 반면, 비교적 자유로운 입장이었던 힐레파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이혼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이 이혼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한 것은 예수님을 논쟁에 끌어들여서 양쪽으로부터 비난받게 할 뿐만 아니라 세례 요한처럼 체포되거나 곤경에 빠뜨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구약 말씀을 가지고 대답하십니다.

 19:4-5,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예수님은 성경이 이혼을 부추기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창세기 1:27을 인용하여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결혼 생활이 인간 존재의 본래 모습이며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세기 2:24을 인용하여 남남이었던 관계가 영원히 나닐 수 없는 온전한 합일체가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런 부부의 관계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결부시키고 있다(엡 5:30-33)는 것을 보면 성경은 부부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서 진정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정신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다 보면 부부관계가 우선 회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19: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이혼에 대한 법규가 나와 있으니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혼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율법이 있으니 이혼해도 괜찮다는 뜻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선민사상에서 그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율법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율법의 정신을 알지 못하고 오로지 그 행위에만 집착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세가 이 율법을 만든 것은 약자인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어책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만든 율법의 정신에 대해서 말씀을 하십니다.

 19:8-9,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그 당시 유대인들은 모세의 이 율법을 악용하여 부인이 요리를 못해도 이혼을 했으며 얼굴이 못 생겼다고 이혼을 하는 등, 다른 여자와 합법적으로 간통을 하려고 이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이유는 모세 당시 여자는 노예나 가축과 같이 하나의 소유물이나 재산과 같이 취급되었으며, 이혼은 단지 소유권을 포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제 능력이 없는 여자에게는 이혼은 치명적인 것이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이혼장은 남자로 하여금 문서를 작성하는 번거로움과 다시금 재고할 기회를 줌과 동시에 다른 남자와 결혼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혼을 허용한 것은 이혼을 정당시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이혼에 대한 율법의 정신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율법의 정신을 끊임없이 가르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이혼에 대한 율법을 준 이유는 그 백성들이 완악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인류의 근원적 문제인 마음의 완악함 자체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정말로 해결이 된다면 이 세상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우리가 예수님을 따른다고 해서 더 이상 우리들이 나쁜 유혹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도리어 끊임없이 유혹은 더 커지게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본능적으로 반항하는 우리의 마음을 구원할 때, 즉 세례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실 때, 그 새로움은 반드시 우리의 결정과 고민과 의지를 통해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우리는 ‘성화’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인 것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형상이 이 세상에 반영되는 주된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결혼 생활을 잘 해나감으로써 진정으로 ‘한 몸’이 되려고 노력하는 일이 힘들고 대가가 크지만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이 세상을 회복시켜 창조주 하나님의 계획이 마침내 실현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간 나는 이런 예수님의 목적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