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베드로후서강해]#5. 3:1-10, "재림에 대하여"

2024. 8. 30. 17:26베드로전,후서강해

 

앞장에서는 성도들을 미혹하여 교회를 분열시키고 성도들을 파멸로 이끄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경고하였고 본 장에서는 재림의 확실성과 임박성을 강조함으로써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영육 간에 건강한 삶을 살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거짓 선생들은 주의 재림에 대하여 우주의 붕괴를 가져오는 주의 재림은 없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천지가 본래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이므로 하나님에 의해 언제든지 붕괴될 수 있고, 이미 노아의 홍수 사건으로 그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에 거짓 교사들의 교훈이 헛되다고 비판합니다. 그런데 주의 날이 그렇게 더디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여 멸망치 않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라고 베드로는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3:1-2, “사랑하는 자 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베드로는 자신이 편지를 쓰는 목적이 그들의 기억을 되살려 그들의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하였고 물론 그 예언에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예언이 많았습니다(5:31, 13:6). 신약에서도 사도들을 통한 주님의 명령도 많았습니다(7:15, 4:1). 그 둘 다 근원은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연결시킴으로써 두 직책의 권위를 동일한 수준으로 올려놓았으며 그 권위는 성령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예언과 계명의 내용은 거짓 선생들에 대한 경계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것입니다.

 3:3-4,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예수님이 곧 돌아오시리라 기대했는데, 예수님이 빨리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가르침은 오류에 근거한 잘못이며, 따라서 그 가르침 중 중요한 부분을 무시해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해 베드로가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의 경고는 1세기 그리스도인의 모든 글 가운데서 지연’(delay)의 문제를 직접 다룬 유일한 구절입니다. 그것은 2세기나 그 이후 그리스도인 저술가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계속 주님이 돌아오실 것이라고, 그 일은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3:5-7,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베드로는 본문에서 거짓 선생들의 주장들을 옛 역사의 한 부분을 뒤돌아봄으로써 반박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창조와 대홍수 사건을 통해 세계를 창조하시고 물로 심판하심으로써 인간 역사에 직접 개입하셨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세상이 불변하고 주님의 재림과 심판이 없다고 주장하는 거짓 선생들에게 심판이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노아의 홍수 심판을 실례로 들고 있는 것입니다. 홍수 심판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고 섭리하시며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예표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라고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의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들은 이 죄악된 세상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될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지금은 하나님께서 인내하심으로써(2:4) 하늘과 땅은 보존되다가 경건치 않은 자들은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되고 말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늘과 땅이 보존되고(6:19, 2:5) 경건치 않은 자들이 유지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것이며 따라서 불사르는 멸망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행해지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3:8-10,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베드로는 시편 90:4를 인용하면서 하나님은 시간을 초월하는 분이시므로 인간의 시간 개념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이 더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지체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면서 모두 회개하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라고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우주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단락은 초기 기독교 서적 전체에서 그런 개념이 나오는 유일한 곳입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알렙 문서를 포함한 몇몇 신약 사본에는 불탈 것입니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대신 찾아질 것입니다발견될 것입니다’, ‘드러날 것입니다를 뜻하는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필사자가 자기 임의 대로 고쳤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신약 사본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즉 필사자가 자기 임의 대로 고쳤거나 아니면 실수로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의 나머지 부분을 볼 때, 베드로는 공간, 시간, 물질로 이루어진 현 세상이 불타서 파괴될 것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수많은 초기 그리스도인 교사들이 말했듯이, 문자적이든 비유적이든 불이온 땅에 나타날 터인데, 그것은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검증하기 위해서입니다. 검증을 톷과하지 못한 것은 다 불태움으로써 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서신 전체에서 베드로의 관심은, 인간을 위해 있는 인간 이외의 우주의 부분이 아니라 인간이 한 일을 근거로 한 인간의 심판에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온 세상에 주의 날이 오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날에 모든 것이 심판받고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라고 베드로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연으로 보이는 시간은, 사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소명의 순간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소명을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나의 소명을 잘 찾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