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3. 11:08ㆍ빌립보서강해
고대 세계 사람들은 영웅적 지도자. 통치자, 왕을 생각할 때면 주로 알렉산더 대왕(주전 356-323)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그는 20세에 아버지 필리포스를 이어 마케도니아의 왕위에 오른 다음, 곧바로 그리스 전체를 집어삼키고, 이어 세계 정복의 과업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그는 33세로 죽을 때까지, 그 시대 사람들이 그를 신으로 여긴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고 합니다. 바울 시대에서는 알렉산더 대왕과 가장 근접한 이는 오랫동안 로마의 내전을 종식시킨 아우구스투스 황제였다고 합니다. 그 또한 신으로 추앙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른 통치자들은 이 모델을 흉내 내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그 당시 세계의 영웅적 리더십이었습니다. 이런 정황을 이해해야만, 나사렛 예수에 관한 바울의 복음 메시지, 곧 그분의 부활이 그분을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자 세상의 참 주님으로 선포했다는 그 메시지가 얼마나 체제 전복적이고 얼마나 반문화적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진짜로 세상의 왕이시고 알렉산더와 아우구스투스는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마가복음 10:42-45에서 바울과 비슷한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한 편의 서사시입니다. 사람들은 바울이 이 시를 직접 썼는지, 혹은 초기 그리스도인 작가의 시를 인용한 것인지 논란이 되기도 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시에서는 예수가 누구시며 그분이 어떤 일을 이루셨는지에 대한 아주 초기의 기독교 신앙 선언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의 신학은 이 놀랍도록 온전하고 풍성한 선언문을 경외하며 바라보았고, 나중에는 메시아 예수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성육신에 대한 고전적 교리로 보았다고 합니다.
2:5-7, “너의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본문 7절은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즉 “자기를 비우셨다”는 표현입니다. 사람들은 간혹 이 표현에 대해, 예수님이 그때까지 신으로 계셨다가 사람이 되셨을 때 어찌어찌하여 신성을 중단하셨고, 그런 다음 다시 신으로 돌아가셨다는 의미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바울이 엄두에 두었던 바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6절의 요점은 예수님이 실제로 이미 하나님과 동등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사람이 되시기(7절) 전에도 이미 존재하셨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되겠다는 결단,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끝까지 순종의 길을 가겠다는 결단, 이 결단은 신성을 중단하겠다는 결단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성이 정말 무엇인지 보여 주시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과의 동등함을 계속 유지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생각하기에 십자가의 핵심은 “하나님께서···메시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하게”(고후 5:19)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요점은 예수님이 이러한 동등함을 이점을 취할 만한 것이나 이용해 먹을 만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예수 안에서 나사렛 예수로 인간이 되신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함을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위임받은 것으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 길은 인간이 되는 길, 기름 부음을 받은 이스라엘의 대표자가 되는 길, 세상 죄의 무게를 지고 죽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등함이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진정 누구신지를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분은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2:8-9,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9절에서 “이러므로”는 6~8절에서 말하는 바를 행하신 예수님이 이런 영광을 얻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육신하시고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기독교적 시각의 핵심인 것입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자 유지자인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유대의 시각에서 우리는 다양한 자기표현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표현들은 아주 다양하지만 밀접하게 연결되어 ‘아버지’와 ‘아들’로 불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자신이 유대의 유일신 신앙에서 벗어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2:10-11,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바울은 유일신적인 구절인 이사야 45:23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자신의 영광을 다른 누군가와 공유하지 않으실 하나님이 그 영광을 예수님과 공유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영원부터 ‘하나님과 동등하셨던’ 분으로 정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이란 알렉산더와 아우구스투스 같을 것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던 바울 당시의 세계 대다수 사람들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은 한 유대인의 모습으로 드러났다는 개념에 많은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충격적인 것을 바울은 전하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은 고난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도 바울은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라고 설교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예수님은 세상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실 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신 하나님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이며 우리가 메시아께 속하기에 우리의 사고방식(5절)이 된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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