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28. 13:11-18. "땅에서 올라온 짐승"

2025. 3. 26. 16:20요한계시록강해

 

오늘 본문은 땅에서 올라오는 또 다른 짐승에 대한 묘사와 그 짐승이 행하는 일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요한과 그의 독자들이 특히 알현실 환상(4장과 5을 통해 알고 있듯이 보좌에 앉아 계신 분은 모든 창조 세계를 다스리는 전능하고 주권적인 주님이십니다. 또한 그분의 아들 어린양은 죽음을 통해 세상을 이기셨고, 사람들을 하나님의 새 창조 세계의 통치자와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죄의 예속에서 그들을 구출한 분이십니다.. 또 하나님의 영은 이 사람들 안에서, 또 그들을 통해 역사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완수하십니다. 반면 1세기 전체에 걸쳐 서부 터키에서 점점 더 강력해지던 패러디는, 즉 가짜는, 사탄적인 용에게서 궁극적 권위를 얻은 로마 제국이 스스로 세계 통치자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가 첫 번째 괴물이었습니다. 또 용과 비슷하지만 그 수하에 있는 두 번째 괴물은, 최선을 다해 지역 차원에서 괴물을 모방할 뿐만 아니라 괴물의 호의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영토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괴물을 숭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각 도시와 각 속주의 지역 지도자들인 것 같습니다. 이 일은 도처에서 진행되었고, 요한의 청중들은 그것에 아주 익숙했을 것입니다. 각 도시마다 로마를 위해. 황제를 위해, 혹은 황제 가문의 가족을 위해 새로운 신전을 하나 더 짓도록 허락받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 실체들이 땅에서 올라오는“ 즉 바다를 건너서 오지 않고, 지역에서 등장하는 두 번째 괴물인 것입니다.

 13:11-12,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등장으로 사탄의 세력은 용과 바다짐승,, 땅의 짐승이라는 삼위일체를 패러디한 지도체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괴물이 거의 죽게된 것처럼 보였지만 다시 살아나 지금 존재한다는 사실이(4명의 황제가 바뀌는 혼란한 시기) 지역 지도자들, 즉 요한이 이들을 ””어린양 같이 두 뿔이라고 말한 자들은 그 괴물을 더 경배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다양한 신상이 돌아다녔고, 숨 쉬고 울고 말까지 하게 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채택된 여러 가지 속임수까지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그 시대의 교양 있는 이교도 저자들은 그런 여러 가지 기술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속임수에 조롱을 퍼붓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담했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지역 괴물의 노력을 통해 첫 번째 괴물을 숭배했고, 그리고 그런 수단을 통해 용까지 숭배했다는 것입니다(13-15).

 13:16-18,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라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땅에서 올라온 괴물, 즉 지역 지도자들은 그 첫 번째 괴물, 즉 로마를 숭배하느냐 아니냐가 지역 공동체에 수용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는 구분하는 것이 되었다고 본문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 공직자들은, 사람들이 필요한 제사를 바치지 않으면 시장에 올 수 없다는 공적 요구 조건을 도입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상거래 가능자상거래 금지자로 구분하는 데 사용된 여러 종류의 표시와 가시적 기호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주 초기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냉혹한 선택에 맞닥뜨렸던 것입니다. 어린양에 대한 진실함을 지키고 생계 수단과 매매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하는 위험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괴물에게 굴복해 지역 공직자의 명령대로 황제에게 제사하든지 양자택일 해야 했다는 것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택하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많은 혼란이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내가 신의 아들같은 문구가 새겨진 황제의 동전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타협으로 간주될까? 만약 내가 황제의 신전에서 제물로 바쳐졌던 것임을 알면서 시장에서 고기조각을 산다면, 그건 문제가 되는가? 이런 문제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문제일 것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도 생각만큼 그렇게 선명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실제와 패러디를 구별하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는 분별력을 갖추도록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18절은 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절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이 절은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패러디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당시 알려진 여러 공식 중 하나에 의거할 때 숫자 666은 히브리어 문자로 쓰인 이름 네로 황제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확실하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숫자 666은 단순히 암호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 역시 패러디란 것입니다. 요한에게 완전수는 777이었을 것입니다. 네로와 더불어 그가 대표하고 구현한 체제는 온전한 숫자에서 하나 모자라는 것이 세 번 반복된, 실재의 패러디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실재셨고, 네로는 위험하고 모독적인 복제품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패러디가 판치고 있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깨어서 무엇이 가짜인지를 구별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실재와 패러디를 구분할 수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