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30. 14:6-13. "영원한 복음"

2025. 3. 28. 16:43요한계시록강해

 

늘 본문은 세 천사가 전하는 세 가지 메시지와 그에 따른 경고를 담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사야서와 에레미아서를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주전 597년에 남아 있던 이스라엘 지파를 삼킨 거대한 제국 수도 바빌론은 그 뒤로 유대인의 기억에 악의 전형, 우상숭배와 부도덕, 더없는 잔인함의 전형으로 남은 도시였다고 합니다. 게시록에서는 ‘바빌론16장과 17, 18장에서 로마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주요 중심 단락인 40-55장은 거의 자포자기 상태의 이스라엘 포로들에게 전해지는 내용입니다. 그들이 사로잡혀간 바빌론은 거대하고 전능해 보입니다. 바빌론의 신들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는 그저 또 하나의 신, 실패한 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야훼의 위대하심과 언약적 신실하심을 이야기합니다. 야훼는 하늘과 땅의 창조주시다. 그분은 바빌론의 별 볼일 없는 가짜 신에게 패배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제는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고, 언약을 재정립하시고, 온 창조 세계를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야훼는 이 모든 일을 종의사역을 통해 하실 것이라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이 예언은 먼저 이스라엘을 구출하고 세상에 정의를 가져다주는 종의 임무를 강조합니다(42:1-9). 그 뒤에 종의 고되고 성과 없이 보이는 사역이 열방에게 야훼를 계시할 것을 강조하고(49:1-7), 그 뒤에 야훼의 음성을 기꺼이 듣는 종의 태도와 그 결과로 인한 종의 고난과 인내를 강조합니다(50:4-9). 그리고 마지막에 자기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는 수치스러운 죽임이 그의 회복과 정당성 인정으로 이어질 것을 강조합니다(52:13-53:12). 이 예언서에는 바빌론에 대한 파멸의 경고가 있습니다. 바빌론은 포로들에게 진노의 잔을 남김없이 마시게 했지만, 하나님은 그 잔을 그들에게 가져다가 대신 바빌론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51:17-23). 압제자가 자신이 구상한 악한 체계에 의해 희생당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에서 이사야는 네 번째 의 시를 시작하며 복음을 가진 전령의 도착을 알립니다(52:7). 이것은 본문에서 요한이 영원한 복음을 전하는 천사로 본다고 독자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본문에서 말하는 영원한 복음은 무엇일까?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의 복음혹은 좋은 소식은 자신들에 관한 메시지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자기들을 용서하시고,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하늘의 복된 곳을 약속하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대부분의 복음요약은 개인적 의미를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그 범위가 훨씬 광대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을 성취하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 사건의 관점에서 (고전 15:3-8), 혹은 예수님이 다윗의 아들이시고 그분이 부활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로 공적으로 인정되셨고, 그분이 우주적 주님이시라는 관점에서(1:3-5) ‘복음을 요약합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에서 인용을 한 것입니다. 요한 또한 이 모든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너희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14:7,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이사야서 52:7-9에서 포로들에게 전해신 메시지 너희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는 것은 너희 하나님, 야훼께서 바빌론에게 승리를 거두셨고, 너희는 이제 자유롭게 집으로 갈 수 있으며 예루살렘이 재건된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사를 정리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독자들에게 담대하게 복음을 붙잡으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빌론이 무너지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4:8, ”또 다른 천사가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바벨론은 음행의 포도주로 열방을 취하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 뒤에 무너진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52:8에서는 너희 하나님이 돌아오신다고 이사야는 말합니다. 바벨론이 접근해 공격했을 때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버리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공개적으로, 또 가시적으로 돌아오실 것이라는 이사야서를 요한은 의식하고 그것을 인용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하고 철저하고 완성할 것이라고 9-11절에서 말합니다. 이 또한 이사야서 52:10에서 하나님은 강력하고 공적인 구원 사역을 행하신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모든 열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곤경에서 구원하셨음을 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벨론은 무너졌고 포로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마침내 야훼께서 돌아오셨다고 말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야훼께서 예수님 안에서, 또 예수님 자신으로 돌아오셨다고 믿었고, 또 예수님이 그렇게 믿으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무고한 어린양으로 죽으셨을 때, 그분의 영광이 온전하고 최종적으로 나타났다고 믿었던 것입니다(53:7). 그러므로 이들에 대해서 합당한 보상이 있다고 12-13절에서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이 9-11절에서 묘사된 범주에 들어오는 사람이 누구인지 안다고 결론을 내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 자체로 문자적 묘사가 아니고 상징적이지만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 가운데 누구도 이 어두운 진노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를 갈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도들은 죽음 자체가 패배했음을 알고, 인내하고 순종하는 신실한 제자가 되어 이제 저주의 근원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을 갈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15:58에서 말하듯이, 그들의 현재 수고는 헛되지 않았다고 13절에서 요한은 말합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저주의 근원이 아닌 축복의 근원이 되고 있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