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44. 21:6-21. "알파와 오메가"

2025. 4. 18. 16:24요한계시록강해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출애굽기는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에 관한 한 편의 긴 드라마입니다.. 출애굽기 전체 내용은 하나님이 대재앙을 통해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시고, 그들에게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신 뒤에, 자신의 거처를 짓기 위해 상세한 지시를 내리셨던 과정입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마지막에 그 거처가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엄청난 투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처가 땅 위에 세워지기 위해서는 항상 어마어마한 저항을 이기는 어마어마한 은혜의 행동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투쟁이고 그런 고충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하늘에서처럼 땅에 임한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의 진행과정은 계시록이 다루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집트의 재앙과 비슷한 엄청난 재앙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바다 옆에 서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는 구속받은 백성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거대한 기만, 거대한 우상 체제, 금과 은과 보석을 둘렀지만 그 속에는 더럽고 불결하고 가증한 억압과 욕망, 폭력, 굴종으로 가득한 큰 매춘부 바벨론을 보았습니다. 금송아지는 패러디고 성막이 실재였던 것처럼, 바벨론은 패러디고 신부가 실재였습니다, 이제 마침내 성막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신다“(21:3)고 말했습니다. 바벨론이 걸친 보석은 아론이 송아지를 만드는 데 사용한 금귀고리처럼, 도성의 기초를 장식하고 있는 보석에 비해 저속하고 가치가 없다고 본문에서 말합니다.

 21:6-8,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심을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시작과 끝이시기 때문에 우주 만물의 창조자와 심판자이시며 스스로 영원토록 존재하시는 자존자이시므로 모든 창조의 목적을 이루시고 모든 것을 온전히 새롭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면서 세상과 죄악, 사탄, 핍박과 고난을 이긴 자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유업으로 상속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누리게 되어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요한은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자들에 대한 경고를 이야기합니다. 즉 그들은 모두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못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첫째 죽음인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영원한 죽음, 곧 둘째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은 결코 이 둘째 죽음을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21:9-11,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양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본절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높은 산에서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것은 에스겔이 높은 산에서 본 성전 환상(40~48)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새 예루살렘을 설명합니다. 우선 새 예루살렘은 아내가 될 신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회의 관계를 보여주며 교회가 남편인 그리스도를 향해 순결과 헌신을 드려야 할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은 하늘로부터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인 예루살렘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 성취되지 않고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으며 또한 이 도성이 하나님께 창조하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은 죄와 사망과 모든 고통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구속받은 성도들만이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거룩한 도성이란 것입니다. 이로 인하여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에 쌓여 있었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14절은 새 예루살렘의 성벽과 문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성문에 기록되고,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입니다. 성벽이 도성을 제한하지만, 성문은 절대 닫히지 않을 것이며 성문은 방어용이 아니라 장식용이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5~21절은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16절에서 새 성전의 규모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은 면적은 측면에서만 거대한 게 아닙니다. 각 방향으로 2400킬로미터, 대략 로마 제국과 동일한 정방형 크기란 것입니다. 이 도성의 높이도 2400킬로미터 입니다. 그는 지금 건물의 모양과 크기가 아니라 상징적 우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도성은 거대하고 완벽한 정육면체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옛 예루살렘 성전 중앙에 있던 지성소의 모습이 그랬기 때문입니다(왕상 6:20). 도성 전체가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도성이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11). 이 말은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임재가 모든 돌과 보석에서 반짝거리고 거리의 순금에서 빛을 발하면서 거기 있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 도성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 장들에서 우리가 주시하는 그림은 분명 궁극적 미래의 환상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계시록의 처음 편지에서 보았듯이, 이 미래의 실재가 죽음과 눈물, 겁쟁이와 거짓말쟁의 현재 세상을 계속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미래의 실재가 예수님이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미래의 실재일 뿐만 아니라 사셨고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이제 영광 가운데 통치하시고 일곱 별을 손에 붙들고 계신 분이기 때문에, 새 도성의 실재는 여전히 희망의 대상이지만, 특히 이 책 곳곳에서 묘사된 방법, 즉 예배와 증언을 통해 현재에서 언뜻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한낱 꿈이 아니라 위로를 주는 미래의 상상입니다. 어린양을 따르는 사람들이 이미 그 도성에 속했고, 이미 그 거리를 걷을 권한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금송아지 때문에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릴 수도 있었듯이, 하나님은 바벨론의 죄악 때문에 창조 세계를 버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순전한 자비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고, 그 자비가 흘러나와 온 세상을 세우 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이런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느끼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 번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