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계시록강해]#9. 3:14-22. "라오디게아 교회"

2025. 2. 26. 16:48요한계시록강해

 

요한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모든 시대의 교회들이 심판의 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면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를 교훈하고 있는데 이제 마지막으로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리비아 동남쪽 약 72km에 위치하고 있으며, 맞은편에는 히에리볼리와 골로새가 있다고 합니다(4:13,16). 라오디게아는 당시 브리기아의 수도로서 안티오쿠스 2세가 그의 아내의 이름을 따서 세운 도시라고 합니다. 소아시아의 내륙과 바다로 나아가는 관문인 에베소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무역과 은행이 발달했으며 의학과 의류 공업의 본산지이기도 했으며, 이 도시의 시민들은 매우 부유하게 살았으며 자유분방한 사회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이곳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고,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으며 제우스 신전도 있었다고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다른 교회들처럼 외부로부터 핍박을 받지도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던 에바브로에 의해 시작된 라오디게아 교회(4:13,16)는 복음에 기초한 정상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하였고 부활하신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칭찬을 듣지 못할 정도로 가장 퇴보되고 저급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에 경고의 말씀을 하십니다.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본문을 이해하려면 라오디게아의 환경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라오디게아가 소유하지 못한 것은 양질의 물이었다고 합니다. 수원지 중 한 곳은 히에라폴리스였다고 합니다. 이곳은 오늘날까지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여러 온천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1세기의 사람들은 계곡 중앙에서 7-8킬로미터 떨어진 라오디게아까지 이 물을 끌어오기 위해 송수로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이 시설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데, 내부에 굳어진 광물 침전물이 덮여 있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이 온천물이 라오디게아에 도달한 때쯤에는 더 이상 뜨겁지 않고 미지근했던 것입니다. 설상가상으로 농축된 화학 물인 탓에 마시기에도 적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라오디게아의 남동쪽에 위치한 골로새에는 눈 덮인 키드모스산에서 흘러내리는 훌륭한 물 공급원이 있었다고 합니다. 빠르게 흐르는, 거의 알프스급 품질의 차가운 시냇물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키로미터 떨어진 라오디게아에 닿을 때쯤에는 터키의 일상적 더위로 인해 이 물 역시 미지근해졌던 것입니다. 라오디게아의 이런 특특한 특징이 일곱 편지 중 가장 유명한 한 부분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이제 라오디게아란 단어는 냉담하다’ ‘이도저도 아니다라는 뜻을 담은 미지근함을 가리키는 유명한 어구가된 것입니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예수님은 슬픔과 화가 뒤섞여 너를 토하여 버린다고 말씀하십니다. , 예수님은 라오디게아의 기독교를 역겹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며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라오디게아는 60년에 대지진을 겪었으나 재건을 돕겠다는 로마의 제의를 거절하고 무너진 성을 자력으로 재건할 정도로 부요하였고 경제력을 자랑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물질적 부요는 오히려 영적인 빈곤을 가져다주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처럼 부요한 상태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매우 궁핍한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깨닫기 못하였던 것입니다. 본절에서 예수님은 요한을 통해 그들이 깨닫지 못한 것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인간들의 습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고난이 닥쳐 오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 고난을 담대히 해쳐가야 할 것입니다(5:3-4).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힌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예수님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실상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만이 제공하실 수 있는 고급 옷, 즉 그 지역에서 인기 있던 검은 옷이 아니라 흰옷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지역 농부들은 특이한 흑양 품종을 개발했는데, 그 양모가 엄청난 고급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갓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새로운 거룩한 삶에 헌신되었음을 알리며 흰옷을 입었음을 상기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새로운 종류이 안연고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는 훌륭한 의술 학교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특히 안과, 눈 치료 전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기가 있는 프리기아 안약을 구하기가 좋은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새로운 종류의 안연고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프리기아의 명물도 그 지역과 사람들의 영적 눈멈을 치료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19절에서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이지만 주님께서는 끝까지 참고 자비를 베푸시며 회개할 기회를 주실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책망하고 징계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마음을 가다듬고 회개하여라고 이 말씀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과 교인들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본문에서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3:3에서 사데에게 주는 경고처럼, 뜻밖의 시간에 돌아오는 집주인이고 문을 열어야 하는 사람은 깨어 기다렸던 종임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이것은 우선 예수님의 집이고, 우리의 임무는 그냥 그분을 집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또 구약성경의 아가서 5:2처럼 이분은 연인이 잠들어 있는 집 문을 두드리는 신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을 들으면서 예수님이 강렬하게 직접 오셔서 자신을 백성들에게 주시는 공식 식사, 빵을 떼는 의식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식사는 메시아의 마지막 잔치를 기대할 것입니다(19,9).

 이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 그리고 이로써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기셨듯이이길 힘을 얻은 사람들은 가장 특별한 특권을 소유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보좌를 공유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21). 다시 말하면 세상을 다스리는 그분의 신기하고 주권적인 통치를 공유한다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이 군사력이 아닌 고난 받는 사랑의 힘으로 도달하신 통치인 것입니다. 이것이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왕 같은 제사장인지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