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4. 14. 10:46ㆍ요한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마지막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전 베다니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는 내용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누가복음 10장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남자들의 전유 공간인 마루에서 그 당시 제자들이 하는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즉 마르다처럼 여자들의 전유 공간인 부엌이 아닌 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문화에서는 파격적인 행동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마르다는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을 위해 성대한 만찬을 마련합니다. 마리아 또한 무대 중앙의 주인공처럼 행동합니다. 이번에는 그저 예수님 발치에 앉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칼로 발을 씻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또한 그 당시 문화에서는 파격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12:1-2,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잔치를 연 곳은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이 아니라 나병환자였던 시문의 집이었을 가능성이 많다고 신학자들은 말합니다(마 26:6, 막 14:3). 아마도 시몬은 예수님에게서 고침을 받은 적이 있으며 예수님께 감사함과 동시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잔치를 베풀었을 것입니다. 마르다는 보통 여자들이 하는 것처럼 부엌에 들어가 일을 거들었던 것입니다.
12:3,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본문의 사건은 공관복음서(마 26:6-13, 막 14:3-9)와 동일하지만 본문에서는 마리아의 헌신적인 행위가 강조되고 공관복음에서는 유다의 배신과 연관하여 언급되고 있지만 둘 다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한 행동은 오늘날로 치면 격식 있는 디너파티에서 여성이 긴 치마를 허벅지 위까지 걷어 올리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을 것입니다. 즉 도가 지나쳤다는 것입니다. 물론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오빠를 살려준 고마움의 표시일 것입니다. 마리아의 모습을 본 구경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마르다는 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마르다는 마리아가 선을 넘고 말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12:4-6,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줄 가롯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유다는 열두 제자중에서 유일하게 갈릴리인 아니었으며 재정을 맡을 만큼 계산이 빠르고 영리했던 것 같습니다. 공관복음에서는 “제자들”(마 26:8), “어떤 사람들”(막 14:4)로 되어있지만 본문에서는 가롯 유다의 이름을 밝힌 것은 제자들이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똑같이 불평을 했지만 ‘후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가롯 유다’가 대표 자격으로 목소리를 크게 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삼백 데라니온은 노동자 일 년 치 품삯이라고 합니다. 베다니의 뜻은 ‘가난한 자들의 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유다는 도둑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유다는 공금을 유용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유다의 반응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12:7-8,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의 말씀은 마리아가 이 값비싼 향유를 그분이 돌아가신 뒤 그분의 몸에 바르려고 간직해 왔음을 암시합니다. 다시 말하면 마리아는 가야바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행동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담긴 그녀의 행동은 머지않아 예수님이 돌아가실 거라는, 그것도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제대로 기름 부을 시간조차 없을 것이기에 지금 당장 하는 게 낫다는 예언적 선언인 것입니다. 다른 한편, 예수님의 말씀은 마리아가 이제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얼마나 남든 그것을 간직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목적이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마리아가 방금과 같이 행동하지 않았더라도, 너무나 중요한 그 순간을 위해 향유를 보관해 두는 것도 적절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난한 사람들의 중요성과 그들에게 임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반복해서 선포하셨다는 걸 감안하면, 이것은 정말 놀라운 선언인 것입니다. 요한은 본문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가장 합당한 해석은 예수님이 자신의 임박한 죽음이 가난한 세상을 포함해서 세상 전체와 거기에 딸린 전부를 바로잡는 행위가 될 거라고 믿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지만, 여전히 가난한 세상, 무력화시키는 빛과 거기서 파생되는 온갖 악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들은 어느 편에 속하는 것일까?
마리아의 편은 자기가 가진 모든 것으로 예수님을 경배하면서, 고된 일을 도맡아 하는 언니의 노여움과, 한 여자가 공개석상에서 머리를 풀 때 드는 자신들의 감정을 믿지 못하는 남성들의 분노, 그리고 가격은 속속들이 꿰뚫고 있지만 그 가치에 대해서는 문외한인 사람의 냉소를 무릅쓸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유다의 편은 유다는 제자들 중에서 가장 똑똑했으며 가장 듬직했을 것입니다. 유다는 예수님 일행의 필요를 채울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것까지 챙기는 사람인 것입니다. 유다가 유월절 마지막 식사 중에 밖으로 나가자(13:29), 다른 제자들은 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언가 주려했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머지 제자 중에 그가 배신할 거라고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겉으로 보면 유다는 진짜 신앙이 좋은 교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향존직들이 아닌가? 아마도 유다의 이런 모습이 우리들의 내면의 상태는 아닐까? 그러면 마르다의 편은 마리아와 유다 두 사람에게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또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이 들겠는가?
이 시간 나는 어느 편인가를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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