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78. 19:25-30. "예수님의 죽음"

2023. 5. 30. 15:06요한복음강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하신 표적 중 첫 번째는 2장에서 물이 포도주로 바뀐 사건이었습니다. 두 번째 표적은 가버나움에서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것입니다(4:46-54). 세 번째는 마비된 사람을 연못에서 치료하신 일입니다(5:1-9). 네 번째는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6:1-14). 다섯 번째는 날 때부터 눈먼 남자를 고치신 사건입니다(9:1-12). 그리고 여섯 번째는 나사로의 부활입니다(11:1-14). 요한의 의도는 여섯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첫 시작부터 요한이 염두에 두었던 창세기 1장처럼, 새 창조의 성취를 완성하는 일곱 개의 표적이 연이어 나오는 것은 불가피한 귀결일 것입니다. 그 일곱 번째의 표적이 바로 오늘 본문 내용입니다. 요한복음 곳곳에서 요한은 예수님이 ‘높이 들여질’ 때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그분을 통해 최고조로 비치는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표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처형이 일곱 번째 ‘표적’ 역할을 하는 것이 요한의 의도였을 개연성이 높을 것을 것입니다. 이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예수님은 마지막 한마디를 외치십니다. “다 이루었다”라고

 19:25-27,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제자들은 모두 도망하였는데 여자들과 한 제자는 도망하지 않고 예수님의 처형장에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여자들은 그렇게 혁명세력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제자는 요한으로 보는 신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요한은 열두 제자들 중에서 가장 어리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18:15-16처럼 병사들은 그가 장차 위험한 혁명가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즉 그를 위협거리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제자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를 부탁합니다.

 요한과 예수님의 모친, 그리고 예수님 사이로 흐르는 이 감동적 장면은 수많은 그림과 묵상의 소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와 요한을 십자가 양 밑에 그려 둔 교회가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모친을 마지막으로 만나는 이 순간은 곳곳에 비애감이 스며 있습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마리아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지적하던 그때를 생각해 보세요(2:3-4), 그때 마리아는 아직 그분의 때가 되지 않았음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예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 사람들이 그대로 하는 것임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도 마리아는 마침내 그분의 때가 되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마도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겪으면서 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친어머니처럼 모셨다고 합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마리아는 11년간 예루살렘에서 살다가 58세에 죽어 겟세마네 동산 입구에 있는 동정녀 무덤에 묻혔다는 설과, 요한과 함께 에베소에 가서 살다가 죽었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19:28-29,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여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신 포도주는 군인들이 사형을 집행할 때 마시기 위해 준비한 값싼 음료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만큼 좋은 최고급 포도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죽음의 순간에 예수님 자신은 하급 병사들이 근무 중에 마시는 값싼 것을 취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서에서 예수님은 여러 차려 물을 언급하셨습니다. 우리가 좀 전에 언급한 2장의 표적에서도 있었고,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자와 ‘생수’에 관해 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생수’를 주셨습니다. 6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은 사람들은 결코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7장에서 자신에게 오면 누구나 ‘생수’를 마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믿음으로써 영원히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속에서 솟아나는 ‘생수의 강’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자신이 정작 목마르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생명의 물이 말라 버렸다는 것일까? 아니면 포도주가 영영 바닥이 났다는 것일까? 예수님은 타인은 구했지만, 정작 자신은 구할 수 없었는가? 이것이 진리의 일부라고 요한은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처해 있는 자리, 갈증과 수치와 죽음의 자리로 가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성경 말씀의 성취인 것입니다(시 69:21). 이것이 그분의 영광이고, 그분의 기쁨인 것입니다.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다 이루었다”의 원어의 뜻은 사람들이 값을 치든 뒤에 계산서에 적는 단어라고 합니다. 즉 계산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마무리되었다는 것입니다. 값을 치렀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일은 이제 모든 면에서 철저하게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나머지 사역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의 몫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나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