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5. 24. 11:45ㆍ요한복음강해
역사 속에서 한 나라의 통치자는 자신의 동상을 자기가 통치하는 나라 곳곳에 세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그 지방 백성들에게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보여 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통치하는 나라에 자기를 닮은 형상을 세운다는 생각은 성경 맨 첫 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십니다. 이것은 그분이 다스리는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계 안에 한 형상, 자신의 형상을 두십니다. 이 형상은 어떤 목적을 위해 거기 있습니다. 곧 이 형상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지혜와 사랑으로 통치하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창조 세계가 이 형상의 통치 아래서, 창조주이신 그분께 마땅한 영광을 돌리기 위함입니다. 이 형상이 인류인 것입니다(창 1:26-28).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사람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해서, 동산과 동물들을 돌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의 6일간의 창조에서, 사람은 여섯째 날, 금요일에 창조됩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안식하십니다.
요한복음의 첫머리를 살펴보면 우리는 창조와 새 창조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1:14 말씀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장 안에서 창세기 1:26-28과도 같은 말씀이신 “말씀이 육체가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 자신이 곧 하나님이셨던 분, 아버지 곁에서 그분의 성품과 사랑을 반영하시던 분이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의 여섯째 날과도 같고, 그 이상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세상 왕, 즉 로마황제와 창조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금요일 아침, 한 주의 여섯째 날에 세상 왕의 부하인 로마 총독과 그 세상을 만드신 진짜 왕의 대면으로 보면, 이해를 하기 좋을 것입니다.
19:1-3, “이에 빌라도가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군인들이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재색 옷을 입히고 앞에 가서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손으로 때리더라”로마 총독은 병사들을 시켜 예수님을 왕처럼 차려 입힙니다. 하지만 그 왕은 채찍질을 당하고 가시나무 관을 쓴 변변찮은 왕으로 여김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지금 빌라도는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구속사역에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어서도 영원히 그 이름은 불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19:4-5, “빌라도가 다시 밖에 나가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을 데리고 너희에게 나오나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하더라 이에 예수께서 가시관을 쓰고 자색 옷을 입고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되 보라 이 사람이로다 하매”빌라도는 자신이 판단하기에는 예수님은 죄가 없다는 것입니다. 즉 가짜 왕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진짜 왕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세상에 가져오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실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 준 분이십니다. 그분이 바로 빌라도가 외친 “이 사람”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지음을 받은 피조물들은 이 창조주의 한 분을 몰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19:6-7, “대제사장들과 아랫사람들이 예수를 보고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들입니다. 즉 이 세상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로 다스릴 사명을 가진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민족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세상 신을 따라가다가 이방세계에 멸망을 당한 민족인 것입니다. 그들의 후손들이 지금 그들의 선조와 계약을 맺은 장본인을 죽이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권세를 잃어버릴까 하는 조바심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로마에 반역하고 있다고 하는 정치적인 고소를 취하하고 그 대신에 예수님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함으로써 신성 모독죄를 지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성모독죄는 사형인 것입니다(레 24:16).
살아 계신 사랑의 하나님이, 자신이 만들었고 지금도 사랑하시는 세상에 몸소 친아들의 모습으로 오셔서 반역을 저지른 세상 가운데 사실 때, 그분의 모습은 죄 없는 왕, 참된 왕, 진리를 말했다가 신성모독 죄로 고발당한 분, 바로 “이 사람이다”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모습이라고 요한은 독자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영원한 말씀이 우리의 육체를 입으셨다는 말의 의미인 것입니다.
이 시간 십자가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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