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요한복음강해]#72. 18:15-27. "베드로가 3번 부인하다"

2023. 5. 19. 15:24요한복음강해

 

<span

 오늘 본문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진실을 말씀하시는 동안 베드로는 하인들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예수님은 대담하게 말씀하시고, 베드로는 숨으려 애씁니다. 하지만 나머지 다른 제자들과 달리, 적어도 베드로는 거기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 세례를 받기 전의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18:15-16,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 있는지라 대제사장을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오니”본문에 나오는 다른 제자는 누구인가 잘 모릅니다. 다만 신학자들은 저자 요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의문점은 남습니다. 왜 사람들은 그에게 예수님의 제자냐고 묻지 않았는가? 어떻게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가 되었는가? 혹시 그가 너무 젊어서 그들이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인가? 이것은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는 것입니다. 그때 문을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라고 묻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아니라 하고 아랫사람들과 불을 쬐고 있었습니다(17~18절). 이 숯불은 다시 이야기에 등장합니다(21:9). 그때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예수님을 보고 자신이 세 번 부인한 것이 생각났을까? 아마도 다른 제자들은 모르는 베드로만의 숯불이었을 것입니다.

 19~24절까지는 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심문한 것에 대한 내용입니다. 분문의 대제사장은 전직 대제사장인 안나스이며 현직 대제사장 가야바의 장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여전히 가야바와 맞먹는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은 대제사장에게 단호하게 말씀하시고, 그 대가로 뺨을 맞으십니다. 오늘날도 테러리스트 지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체포된다면, 그의 동료는 누구인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슨 일들을 저질렀는지를 심문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는데 어떤 도움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가르침과 관련해서 지난 2~3년간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해 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심문하는 그들 또한 예수님의 말씀, 즉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올바른 방식과 잘못된 방식, 다시 말하면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 혁명과 예수님이 추구하시는 근본적으로 다른 혁명의 차이를 자세히 들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예수님을 처형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야바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보내서 로마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절차를 밞기 위해 공의회를 소집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형을 시키려면 반드시 로마 총독의 허락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18:25-27,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쪼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아니라하니 대 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잘린 사람의 친척이라 이르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아마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따라온 이유는 충성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3년을 함께 하면서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가 이해하지 못한 그 절반의 진실이 베드로로 하여금 3번 부인하게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베드로는 거의 멘붕 상태에 빠져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멘붕에 빠지면 거의 본능적으로 행동을 한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동산에서 솟구친 열정이 사라지자, 그는 차갑게 식었고, 지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행여 자기가 동산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칼을 휘두르다가 대제사장의 하인의 귀를 잘랐다는 사실이 발각된다면 자신 또한 예수님과 같이 처형이 당할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을 것입니다. 이 모든 생각이 한꺼번에 엄습하자, 두려움과 공포, 거짓말, 배신을 낳았을 것입니다.

 요한은 이 이야기를 꾸밈없이, 진솔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 저자들과 달리 요한은 베드로가 밖으로 나가서 울음을 터뜨렸다는 말조차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베드로를 탓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들의 모습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상처가 치유되려면 선한 목자의 온유하고 세심한 돌보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구원이 필요한 이유인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 안에는 ‘치유와 회복’(salvation)이 있습니다. 우리들의 구원을 위해 지금 예수님은 심문을 받고 계시며 또한 십자가의 길로 가시고 있는 것입니다.

 수탉의 울음은 베드로에게 하신 예수님이 예언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13:38). 그러면 그 다음날 아침 다른 예언들도 성취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로 올라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을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이 시간 나는 과연 베드로와 같은 상황에 처했으면 어떻게 했을까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