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6. 5. 15:48ㆍ요한복음강해
고대 세계의 사람들은 부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들은 부활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전 세계에서 사람들은 부활이 상상에서는 가능하지만 실제로 일어난 적은 없었고, 또 그럴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물론 유대인들은 부활이 일어날 거라고 믿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유대인이 그런 건 아니고, 사두개인들은 단호하게 부활을 배격했다고 합니다. 또 부활이 무슨 의미인지. 부활이 어떤 모습일지 유대인들이 늘 분명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11:24에서 보았듯이, 그들은 부활이 일어난다면 모든 하나님의 백성에게 한꺼번에 일어날 거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즉 부활은 한 사람에게 일어날 사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부활을 민족 공동체의 사건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런 부활사상을 배경으로 오늘 본문에 다가가면 좋을 것입니다.
20:1, “안식 후 첫날 일찍이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태초에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육체가 되셨습니다. 육체가 말씀하고, 생명과 빛을 가져오셨습니다. 그분이 어디를 가든, 그분 주위에 새로운 창조가 넘쳐흘렀습니다. 그런데 그 육체가 죽습니다. 혼돈이 다시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흐느끼는 작은 무리에게 어둠이 임합니다. 희미해지는 빛 속에서 두 사람이 자신의 임무를 다합니다. 그런 다음 긴 안식일이 끝나고 한 주의 첫날, 새로운 주, 새로운 창조, 여덟째 날이 온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마리아와 함께 십자가 밑에 나타나기 전에는 요한복음에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아는 단편적인 정보는 다른 복음서를 통해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의 위치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을 알린 첫 인물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다른 제자들은 안식일 동안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보내었을까? 아마도 이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이 끝나고 그 새벽에 달려온 것입니다. 아마도 막달라 마리아는 안식일 동안 오직 예수님에 대한 생각으로 보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 단락에서는 훨씬 더 중요한 특권을 누리는 것입니다. 즉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만나고 대화를 나눈 첫째 인물인 것입니다.
20:2-3,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비록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베드로는 제자들 가운데서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제자는 본서를 기록한 요한일 거라고 신학자들은 주장합니다. 평소 예수님을 적대시하던 유대교 광신자들이 시신을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요한이 베드로보다 무덤에 먼저 도착한 것은 요한이 젊어서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처형 장면을 직접 목격하면서 무덤의 위치도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4절). 그는 주의 깊게 자세히 관찰하기 위해 몸을 굽혀 세마포가 놓여있는 것을 보았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습니다(5절). 아마도 어려서 무서워 선뜻 나서지를 못했을 것입니다. 한편 베드로는 성격대로 무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6절).
20:7-8,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쌌던 대로 놓여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누군가가 시신을 가져갔다면 옷을 정리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스스로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럼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 짧은 순간 그들은 부활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을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보고 믿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전에도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분을 보내셨고, 그분은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세상을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보고 믿었다”. 즉 새 창조가 막 시작되었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그분의 모든 인품과 사역에 “그렇다”라고 말씀하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20:9-10, “(그들은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이에 두 제자가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보고 믿기는 했지만, 성경에서 이 사실에 대해 예언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깨달았으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가벼웠을까? 그리고 집에서 의기소침하여 노심초사하면서 기다리던 동료들에게 확신 있게 말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다고,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가 맞다고, 그러므로 우리들은 힘을 내고 담대히 나아가자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성경의 예언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중심을 잡지 못한다는 것을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사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사로는 자기 몸의 천과 머리의 수건을 풀어 줄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천과 수건을 그대로 남겨 주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음 이후 여전히 세상 권세가 기세를 떨치는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12:10). 예수님은 죽음을 거쳐 새 세상, 새 창조, 저 너머의 새 생명으로 건너가셨던 것입니다. 그곳은 죽음이 패배하고, 생명, 순수한 생명, 모든 충만함 가운데 있는 생명이 마침내 시작되는 곳입니다.
이 시간 나는 그 새로운 생명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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