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창세기강해]#11. 2:18-25. "하와의 창조"

2025. 5. 13. 16:21창세기강해

 

오늘 본문은 하와의 창조와 최초의 결혼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인간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어 살게 하심으로써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이 완전히 만족에 이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즉 아담은 다른 동물들이 모두 배필이 있었던 것과 달리 그만 유독 홀로 독처함에서 오는 자연 발생적인 고독과 완전한 내적 만족이 결핍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것을 기쁘게 여기지 않으시고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 곧 하와를 지으사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이러한 여자의 창조와 그로 인한 아담과 하와의 인류 최초의 결혼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본문에서 ”좋지 아니하다란 히브리어는 로 토브입니다, 즉 ’토브‘는 9절에서 말한 바 ’선하다‘란 뜻입니다. 그리고 는 부정어 ’not’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나쁘다’ 는 의미가 아니라,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소극적 의미이며 당시 상황보다 더 좋은 상태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좋지 아니하니“란 표현은 창조된 아담의 상태가 선하며 복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인간이 혼자서 지내는 것보다 부부가 함께 사는 보다 이상적인 상태가 있음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돕는 배필에서 돕는의 뜻은 단순히 도움을 주다’ 는 의미뿐 아니라 호위하다’ (12:14), ‘더하다’ (1:15)란 의미도 지닌다고 합니다. 그리고 배필바라보다’ (왕하 2:7), ‘마주 대하다’(3:28)라는 기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뜻은 그를 마주보는 자처럼 돕는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부인은 남편에 대하여 돕고영광을 더하는 배필이 되어야 하며, 또한 남편을 바라보며’, ‘사모하는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자이며 남자와 동일한 존엄성과 인격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해 고린도전서 11:11-12에서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느니라“고 밝혔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19-20,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의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본문에서 ‘7절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사용된 그 흙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두 죽게 되면 그 몸이 썩어 원래 재료인 흙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생기를 부여받은 존재이고 영혼을 지니는 인격적 존재라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는 절대 구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이 그 들짐승과 새들의 이름을 무엇이라 부르나 보시려고“란 구절에서 보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부르는 주체는 인간 아담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시자마자 그냥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무엇을하는지 세밀히 살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저자는 독자들에게 이런 세심한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닥친 고난과 역경을 잘 알고 계시니 담대히 나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20절에서 이름을 주니라란 단어를 직역하면 그러자 그는 이름을 불렀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름은 무척 중요한 것으로 취급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대개의 경우 이름은 그 사용의 특징을 잘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름을 지으려면 그 사물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먼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아담의 상태가 각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 정도로 지혜와 통찰력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을 짓는 것은 이름을 짓는 자가 이름을 지어 준 대상에 대해 우월하며 또 소유권이 있음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과 자신이 소유한 땅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도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우월함과 자연에 대한 보호, 보존하는 권한을 인간에게 부여하셨음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보내 주신 모든 동물들을 세심히 살피고 그 특징에 따라 각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면서 돕는 배필을 열심히 찾았으나 결국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시고자 합니다.

 2:21-23,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본문에서 깊이 잠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뜻은 정신을 잃다’ (76:7, 8:18)란 뜻을 지닌다고 합니다. 이는 아담이 자연적인 수면 상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 말미암은 초자연적인 깊은 잠에 빠졌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셨는 것은 다른 동물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다른 동물들은 암, 수 함께 여러 쌍을 동시에 창조하셨으나, 사람만큼은 한 남자 아담을 먼저 창조하시고 그 갈빗대를 취하여 한 여자 하와를 창조하셔서 그 베필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딤전 2:13). 그러므로 동물은 그 특성에 따라 수컷 한 마리가 여러 암컷을 거느릴 수도 있고 때로 짝짓기 대상을 바꾸며, 교미가 끝나면 암수 각자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한 남자가 한 여자만을 배필로 삼아야 하며 또한 본래 한 몸이므로 죽음이 갈라놓기까지 헤어져서는 안 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0:9). 이처럼 결혼제도는 인간의 창조와 동시에 주어진 신성한 것이라고 저자는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에서 ‘뼈은 몸 전체를 대표하는 단어입니다. 이처럼 몸을 가리키는 두 단어를 동시에 사용할 뿐 아니라 또한 각 단어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을 향해 나아오고 있는 하와를 본 당시 아담의 기쁘고 감격적인 심정을 매우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라는 표현은 뼈 중에서 가장 소중한 뼈’, ‘살 중에서 가장 소중한 살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혈육이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2:24-25,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본문에서 떠난다는 미완료형으로, ‘연합하다’, ‘이루다는 완료형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떠난다는 단어가 미완료형으로 쓰였다는 것은 결혼이 지금까지 부모에게 속해 있던 상태에서 떠나는 것이기는 하나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인격적인 존재로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을 뜻함을 암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반면 연합하다이루다가 완료형으로 쓰인 것은 결혼은 남녀가 단지 육체적, 형식적 연합이 아니라 상호 간에 서로가 상대에게 속해서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19:6). 그러므로 결혼은 결혼 그 자체로서도 고귀한 가치를 지닌다고 저자는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본문 말씀을 초대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부로 비유된 성도가 신랑으로 비유된 예수와 어떤 원리와 연합하여 일체가 되었는지 이끌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자는 뜬끔없이 두 사람이 벌거벘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였다”고 말합니다. 이는 무언가 다음에 중요한 사건이 있음을 예고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오늘 본문을 잘 이해하고 실행한다면 최소한 그리스도인들만큼은 이혼문제에서 모범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자격이 하나님의 이 우리 내면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라고 바울이 말했으므로(8:9),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우리 내면에 있다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님도 말하셨습니다(5:43-48). 성경의 이런 내용을 알고 기도하고 묵상을 함으로써 부부간에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인내하면서 결혼생활을 신앙으로 승화시킨다면 이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바라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결혼 생활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