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창세기강해]#32. 9:18-29. "술 취한 노아"

2025. 6. 19. 16:10창세기강해

 

오늘 본문은 노아의 실수와 예언 및 노아의 죽음에 대한 내용입니다. 아담의 자손으로 난 사람 가운데 죄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사람 가운데는 완전한 자가 아무도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 사실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본문은 노아의 이야기가 최종 종결되는 부분으로 당대에는 완전한 의인으로 불렸던(6:9)(6:9) 노아가 홍수 사건 이후 생애 말년에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는 추태를 보인 사실을 기록함으로써 죄로 오염된 인간의 불완전함과 그 부패상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9:18-19,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본문은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세 아들로 인해 인류가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셈, , 야벳 뿐 아니라 함의 아들 ’가나안‘의 이름이 나오는 것은 가나안이 성경의 역사에 있어서 관심을 가져야 할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속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은 구약 시대 구속 역사의 주역이었던 이스라엘 역사와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정착한 지역이 가나안이며 또한 선민 역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은 그 땅에 거하고 있는 함의 아들 가나안의 후손들인 가나안 족속들과 계속 투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가나안이 어떠한 자였는지 아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본문에서도 가나안이란 이름이 등장한 것입니다. ’가나안‘의 이름의 뜻은 두 가지 견해가 있다고 합니다. ’천한 것으로 보는 것과 다른 하나는 ’낮은 곳에 거하는 자로 보는 것입니다. 전지는 25,26절에 나오는 노아의 예언에서도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나안의 신분이 종이란 사실을 반영하는 견해이고, 후자는 후에 가나안 족속이 저지대인 팔레스타인에 거주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견해인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전자의 경우가 타당할 것입니다. 또한 노아의 후손들이 온 땅에 퍼진다는 것은 홍수 심판 이후 노아와 그 자손에게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그중에서 번성하라는 축복이 성취되었음을 성경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7). 약속을 이루신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으라고 성경 저자는 독자들에게 권면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9:20-21,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본문은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실수하는 내용입니다. 지금도 방주가 도착한 곳인 아라랏 산이 있는 인근 지역에는 예로부터 포도 재배가 성행했으며 아랏 산 서편 기슭에는 노아의 포도원으로 알려진 유적지가 있다고 합니다. 홍수를 경험했을 때 노아의 나이는 600세였으므로(7:11). 홍수가 끝난 후 오랜 세월이 흐른 것으로 추정되는 노아는 술을 즐긴 나머지 지금까지 그가 보여 왔던 경건의 이미지와는 다른 추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서 그 장막 안에서의 원어직인 의미는 당시 노아가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여 그의 개인용 장막에 들어박혀 술을 마셨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노아가 다른 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술에만 탐닉한 결과 술에 취하여 벌거벗는 추태까지 보이게 된 것이라고 성경 저자는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9:22-23,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본문은 노아의 실수에 대해 함과 셈 및 야벳의 상반되게 행동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의 원어적인 의미는 단순히 쳐다보는 것을 넘어서 구체적인 목적을 가지고 면밀히 살피며 더 나아가 즐기면서 보는 것을(23:31, 53:2)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는 부패한 이 세상에 대한 대홍수 심판이 있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벌써 노아가 술에 취하여 자기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한 지경에 빠지고, 또한 아들이 아버지를 존경하지 않고 오히려 아비의 잘못을 즐기고 조롱하는 현상이 생겨난 것은 인간이 얼마나 최에 대해 약한 존재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본문은 함이 아비의 하체를 보고 장막 밖으로 나간 후 바로 뒤이어 두 형제에게 아비의 약점을 공개하는 더욱 심각한 잘못을 계속 저지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이 함의 말을 듣자마자 즉시 사태를 수습한 것과 이때 그들이 극히 조심스럽게 이 일을 단계적으로 진행한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서 덮었으며의 단어의 뜻은 덮어서 가리다란 뜻도 있지만 이 단어는 때로는 죄를 가려서 용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고 합니다(3:37, 32:1). 그러므로 당시 셈과 야벳이 한 행동은 노아의 수치를 가려 준 것이며, 또한 허물을 덮어 준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9:24-27,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본문은 노아가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노아는 술에서 깨어난 후 자신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사건의 전모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본문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를 모독한 자는 함인데 저주를 받은 대상이 함의 넷째 아들 가나안(10:6)인 것은 당시 가나안이 함이 노아를 모독하는 현장에 같이 있었거나 아비 함에게 할아버지 노아가 벌거벗은 채 자고 있음을 알렸거나 오히려 노아를 모독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가나안은 벌써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저주의 대상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노아의 저주는 후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때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었고(9:23) 솔로몬 시대에도 노예가 되었으며(왕상 9:20-21), 인류 역사 가운데서도 페르시아인, 마케도니아인, 로마인의 종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26절에서 셈의 하나님 여호와의 표현이 사용된 것은 노아의 맏아들 셈이 특별히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경건한 자였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셈과 셈의 후손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특별한 찬양을 받으시고 예배를 받으실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7절에서 야벳에 대한 축복은 엘로힘즉 하나님이란 한 가지 명칭이 쓰인 반면 앞절에서 셈에 대한 축복은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는 명칭인 엘로힘과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고 신실히 지키심을 강조하는 명칭인 여호와가 함께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셈에 대한 축복은 영적 측면이 강조된 반면 야벳에 대한 축복은 육적이고 세속적인 측면이 강조되었기 때문이라고 신학자들은 해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27절에서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의 의미는 축복을 나누어 가진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9:28-29,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세가 되어 죽었더라위대한 신앙의 사람 노아도 이전에 살았던 조상들과 마찬가지로(5:1-27) ‘죽었다란 간단한 말로 생애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선한 사람이든 악한 사람이든 관계없이 모두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12에서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하면서 육체적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진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하며 언제 죽어도 후회 없는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일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날마다 죽음을 연습하며 후회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