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3. 16:23ㆍ창세기강해
오늘 본문은 바벨탑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1-11장 사이에 기록된 4대 사건 중 하나인 것입니다. 즉 원역사 시대에 일어난 천지 창조, 인간의 타락, 대홍수 심판과 함께 원역사 시대의 4대 사건의 하나란 것입니다. 바벨탑 사건은 그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서 앞의 세 사건들처럼 스케일이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연대에 있어서도 4대 사건들 중 가장 뒤늦은 것으로 앞선 사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보다 가깝게 느껴집니다. 그러면서도 에덴 동산에서의 최초의 범죄 이후 인간의 본성이 죄성으로 오염된 나머지 그 인격의 깊은 곳에 내재하게 된 인본주의의 실체와 그 결과를 이처럼 극명하게 노출시킨 사건도 없을 것입니다. 또한 인간들이 세계 도체에 흩어져 언어와 사고방식을 달리한 채 살게 된 인류 보편의 일상적 현실 문제들의 가장 직접적 원인을 보여 주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 타락한 고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대홍수 사건을 경험한 인간은 스스로 낮추면서 하나님께 순복 하는 삶을 살아야 마땅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다시금 급속도로 번성하게 되고 점차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자 또다시 하나님을 거부하게 되었습니다. 즉 인류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1:28)는 하나님의 명령과 달리 흩어짐을 면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바벨탑의 건축은 하나님의 주권과 권위에 도전하고자 하는 그릇된 것으로 교만과 허영의 소산이었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바벨탑 건축을 중단시키시고 인류를 온 땅에 흩어지게 하셨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1:1-2,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본절은 인류가 시날 평지로 이동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온 땅의 언어가 하나”라고 밝히고 있는 것은 온 인류가 동일한 언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먼저 밝히는 것은 결국 바벨탑 사건으로 인하여 비로소 언어의 혼잡이란 불행한 사태가 생겨났음을 더욱 명료히 하기 위한 사전 조치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본문에서 “언어와 말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 사이에 의사 소통의 불편이 전혀 없었음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방” 즉 ‘케뎀’은 곧 에덴의 동편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이처럼 ‘케뎀’은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하나님이 태초에 처음 창조하신 그때의 에덴과 깊은 연관을 지니며 바로 그 에덴의 ‘동편’은 인간이 다시 돌아가야 할 본향의 문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동방으로 옮기다” 란 의미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거하시는 에덴에서 동쪽으로 사람들이 멀어져 가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원어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단순히 방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부터 멀어져 감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단순히 공간적 거리의 멀어짐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의 멀어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들은 죄에 속성에 빠져들고 있다고 성경 저자는 독자들에게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날 평지”는 유브라데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위치한 바벨론 지역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이 지역은 물이 풍부했을 뿐 아니라 넓은 평지로 둘러싸여 있었으므로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게 하였을 것입니다. 또한 “만나 거기 거류하며”를 직역하면 ‘그리고 그들은 발견했다 그리고 그들은 거하였다’라고 합니다. 이처럼 원어 성경은 그들이 발견한 사실과 거한 사실을 각각 독립적으로 묘사하며 그 일을 결정하고 행동에 옮긴 주체가 바로 그들 자신임을 밝힘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자신의 판단에 따라 행동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멀리 떠난 인간의 죄성에 대해 성경 저자는 암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1:3-4,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며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본절은 인류가 바벨탑을 쌓을 것을 의논하는 이야기입니다. 바벨론 지역은 돌이 귀한 대신 벽돌을 만들 수 있는 흙이 풍부했으며 그 흙은 하얀 점토질이어서 이것으로 만든 벽돌로 흰색을 띠었다고 합니다. 또한 본문에서 “자”의 원어 ‘하바’는 ‘함께 하다’란 의미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벽돌을 만들며 이를 굽고 역청을 사용하여 탑을 쌓는 고되고 어려운 작업을 함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이처럼 죄악된 인간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악을 도모하는 일에서는 서로를 부추기는 악한 성향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잠 9:16-17). 또한 바벨탑을 쌓는 벽돌은 햇볕에 말린 벽돌이 아니라 불로 구워서 내구성이 매우 강한 벽돌을 사용하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은 당시 사람들이 힘을 합하고 정성을 모으며 온갖 노력을 다 기울여 건설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다 “역청”을 더하니 그 벽돌은 엄청 견고했을 것입니다. 이들이 바벨탑을 건설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함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언약, 즉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9:7)고 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제거하려는 시도이며, 또한 하나님 명령에 대한 방해인 것입니다. 이에 여호와께서 바벨탑을 보시려고 내려오십니다(5절).
11:6-7,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 후로는 그 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본문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언어를 혼잡케 할 것을 계획하시는 내용입니다. 본문에서 “한 족속”의 의미는 ‘동질성이 강한 집단’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본문에서 이 말은 당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이 모두 노아의 후손으로 혈연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말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이들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바벨탑을 쌓는 범죄에 동참하는 동질성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를 직역하면 ‘그리고 이것은 행하기 위한 시작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풀어서 번역하면 ‘그리고 이것은 그들이 하려는 것의 시작일 뿐이다’라는 것입니다. 즉 본문에서 성경 저자는 당시 이들이 행하는 일은 단지 죄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죄들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7절에서 “우리가 내려가서”에서 ‘우리’는 기독교적 교리로서는 ‘삼위의 하나님’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구약의 해석법으로는 셈 계통 언어 특유의 묘사로서 대단한 존재임을 보여 주는 복수적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시며 또한 이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습니다.
11:8-9,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본문에서 “흩으셨다”의 원어의 뜻은 ‘산산히 깨뜨리다’라고 합니다. 따라서 본문은 유리그릇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짐으로 그 조각을 다시 이어 맞출 수 없게 되듯이 인간들 사이에서도 돌발적인 분열 현상이 일어났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벨’의 뜻은 ‘혼잡’, ‘혼란’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고대 근동의 오래 된 자료를 살펴보면 바벨의 이름이 ‘신의 문’이란 뜻을 가진 ‘카딘기르키’로 나와 있다고 합니다. 이는 바벨탑을 쌓던 자들이 하늘을 향해 쌓고 있는 탑에 대해 가졌을 생각을 반영하는 이름이라고 합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에까지 닿아 신들이 있는 곳의 문에 도달하겠다는 실로 교만한 의지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의미를 지닌 바벨을 산산이 흩어짐으로써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며, 동시에 인간의 하는 일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보여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이 ‘바벨’이란 이름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에게는 오직 혼란만이 있을 뿐이라고 성경 저자는 독자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14:33,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라”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 나는 내 마음 속에 바벨탑을 쌓고 있지나 않은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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