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87. 30:11-16. "생명의 속전"

2022. 9. 16. 21:09출애굽기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의무적으로 바쳐야 할 세금, 곧 생명의 속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내용입니다.

 30:11-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조사할 때에 조사받은 각 사람은 그들을 계수할 때에 자기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것을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대 사회에서 인구조사는 정치적 권위를 나타내는 한 방법이었으며 세금 징수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조사받은 각 사람'여기서 '사람'은 성인 남자(20세 이상)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성인 남자만을 계수한 목적은 아마 그들로 군대를 조직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에서 '생명의 속전을 들릴지니''속전'의 뜻은 '덮개'란 뜻입니다. '생명의 속전'이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의 피를 덮어 죄 없는 것으로 인정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드리는 일종의 배상금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 속전 제도는 애굽에서 종노릇 하던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출애굽 사건을 배경으로 제정된 것입니다. '질병이 없게 하려 함이라'하나님이 인구 조사의 목적이 이러한 질병을 없게 하기 위함이란 무슨 뜻일까? 그것은 곧 자신이 장성하여 이제 이스라엘 공동체의 어엿한 일원으로 계수받게 된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해 주신 하나님의 구속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속전을 지불하라는 의미입니다.

 30:13, "무릇 계구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의 세겔로 성소의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성경에 나오는 세겔의 단위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성소 세겔'과 '왕실 세겔'(삼하 14:26), 그리고 '일반 세겔'입니다. 이 중에서 성소 세겔이 가장 가볍고 왕실 세겔이 가장 무겁다고 합니다. 속전으로 바쳐진 반 세겔은 모세 당시 성막 건축을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 가서 이것은 정기적인 성전세가 되었다고 합니다(마 17:24). 한편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1/3세겔로 줄어들기도 했다고 합니다(느 10:32).

 30:15,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이처럼 빈부에 관계없이 속전 액수가 동등하게 부과된 것은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존재임을 뜻합니다. 이는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어 똑같이 생명을 얻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난한 자나 부유한 자, 천한 자나 귀한 자를 막론하고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친히 생명의 속전으로 하나님께 내어 주셨습니다(고전 1:18-31).

 30:16, "속전을 취하여 회막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대속하리라"당시 일반적으로 인구조사를 통해 징수한 세금이 국고로, 혹은 왕 개인의 소유로 귀속된 데 비해 이스라엘에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되어졌다고 합니다. 이는 세상 나라와 구별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들의 속전으로 성막 기구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볼 때 자신들이 구속받았음과 자신들이 이스라엘의 종교적 공동체에 동등한 권리를 갖고 참여함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두고두고 기념할 수 있는 기념비적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속전을 냄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나라의 배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주신다는 것입니다. 본문 말씀처럼 질병에서부터 보호해준다는 것은 모든 것을 함축해서 한 말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은유로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문자적으로 해석을 하면 우리가 질병에 걸리면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하나님이 보호하지 않아서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았다는 것으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의 삶은 예수님을 조용히 따라가는 삶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죽어서 영생을 누리는 데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 사람이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즉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암 투병을 하면서 죽음 이후에 소망이 있으니까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암 투병을 잘했는 것 같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써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 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이 얼마나 가슴이 뛰는 말인가! 천지를 주제 하시는 분이 우리를 택하셨다니!

 이 시간에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힘차게 살아봅시다, 또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명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