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28. 16:18ㆍ출애굽기강해
오늘 말씀은 물두멍에 관한 설명입니다. 물두멍은 놋 거울로 만든 일종의 커다란 세숫대야로서 번제단 앞 성소 입구에 위치했다고 합니다. 그 용도는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 혹은 제사를 드리기 전 먼저 손발을 씻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세한 모양이나 크기, 제조 방법 등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이 물두멍에서 손발을 씻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물론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 나아가거나 제사 의식을 집전하기 전, 더럽혀진 손과 발을 깨끗이 씻는다는 정결의식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다 깊은 상징적 의미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심령이 물과 성령으로 깨끗이 씻음 받고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물두멍에 담긴 물은 인간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기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쏟아 흘리신 예수님의 물과 피를 연상케 합니다(요 19:34, 계 7:14)
30:18, "물두멍을 놋으로 만들고 그 받침도 놋으로 만들어 씻게 하되 그것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그 속에 물을 담으라" 모양이나 제조 방법 등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으나 원어의 뜻으로 판단하면 둥글게 생긴 큰 대야나 욕조 형태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38:8절에 의하면 이것은 회막 문 앞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들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러한 물두멍은 본래 하나였으나, 훗날 솔로몬 당시에는 성전의 규모에 비례하여 10개로 늘어났다고 합니다(왕상 7:38).
30:19-20,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물로 몸을 씻는 것은 고대에 성행하던 종교 예식이었다고 합니다. 이는 곧 죄를 씻어낸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행동이기도 하면서 먼지와 흙으로 더러워지기 쉬운 광야 지대에서는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러나 물이 귀한 광야 지대에서 매번 제사드리기에 앞서 손과 발을 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상당한 노력이 따라야 했습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제사는 그 준비 단계에서부터 노력과 정성이 따라야 함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들도 이와 같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요 4:24). 비록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부정한 몸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 이는 곧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한 침범이 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30:21, "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물론 이러한 의식적인 규례는 구약 제사 제도가 지속되는 동안 제사장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영적인 의미는 오늘날 만인 제사장적 자격을 지니고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그대로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두멍은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출 38:8). 그러면 왜 수종 드는 여인들의 거울로 만들었을까? 아마도 손, 발을 씻을 때마다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것이 아닐까? 인간의 내면에 있는 죄스러운 마음, 즉 '탐심'을 보라는 것이 아닐까? 십계명의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인 '탐하지 말라'라는 우리들의 모든 죄들의 근원인 '탐심'까지 깨끗이 하고 성소에 들어오라는 의미가 아닐까?
물두멍의 크기가 제한이 없는 것은 어떻게 이해를 하는 것이 좋을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요 13:10).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겨 주시면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우리의 회개하는 마음을 다 수용하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지만 우리의 죄된 몸은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죄를 짓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낙심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우리가 지은 자범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기들의 물두멍을 자기 가슴속에 하나씩 가지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물두멍을 통해 우리 자신 내면에 있는 '탐심'이라는 것을 꺼내보고 그 '탐심'과 우리의 죄된 마음을 성령의 물로 씻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된 마음을 어루만져주셔서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오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거룩한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마음(하트)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뇌를 지배하여 행위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뇌에서 행위가 나오면 율법적인 바리새인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차가운 '뇌'의 종교가 아니고 뜨거운 '심장'의 종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시간에 우리 자신에 있는 물두멍으로 우리 내면의 세계를 비추어봅시다. 우리들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지 한 번 알아봅시다. 만약에 우리 심장에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 내면의 물두멍에 손발을 씻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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