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10. 14:58ㆍ히브리서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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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에서 예수님이 천사들보다는 뛰어나신다는 논증을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가지실 때에도 그가 어떻게 천사들보다 더 뛰어나실 수 있는가? 천사들은 자신을 제한하는 인간의 몸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입으신 그리스도보다도 더 뛰어난 존재가 아닌가?라는? 새로운 질문이 제기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본문은 1:14에 이어 아들이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2:5-6, ”하나님이 우리가 말하는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니라 그러나 누구인가가 어디에서 증언하여 이르되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본절은 히브리서의 핵심 주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즉 새 세상과 그리고 하나님은 이 다가오는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다스려지기를 바라시는가입니다. 다시 말하면 ”올 세상“이 오늘 본문을 포함하여 히브리서 전체의 주제란 것입니다. 그리고 이 논증의 대부분의 요지는 메시아 예수님 안에서 이 희망이 이미 세상 속으로 분출되어 마침내 존재하게 될 새 세상의 확실한 표징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가오는 세상에서 원래의 창조 질서가 마침내 실현되기를 바라십니다. 즉 스스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헤롭고 창조적으로 세상을 통치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동산과 동물에 대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물론 창세기 3장의 ‘타락’으로 인해 온갖 방면에서 변질되긴 했지만, 이 역할은 지금 히브리서가 인용하는 시편 8편에서 제확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편은 질문합니다. 대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광대한 창조 세계에 비추어 보면 이산은 더없이 작고 미미한데, 왜 하나님은 인간을 그토록 특별하게 대하시는가? 그 대답은 신비롭고 인상적입니다. 지금 인간은 천사보다 더 낮은 존재로 비천해 보이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세상의 참된 지배자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영화와.” 존귀의 관을 씌우셨다“는 의미가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시 8:5).
6절에서 ‘인자’란 단어는 단수, 즉 ‘한 인간’입니다. ‘인자’라는 어구는 다니엘서나 예수님의 가르침을 알았던 이들에게는 ‘메시아’를 의미했을 것입니다. 이로써 메시아는 이제 참되고, 전형적이고, 진정성 있고, 대표적인 인간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히브리서가 염두에 둔 내용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둔다고 말하는 인용문의 마지막 문장이 1:13에 인용된 시편 110편 본문 ”내가 너희 원수를 너희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어라“(시 110:1)을 끄집어 낸다는 사실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0-28에서 바울이 하는 것과 똑같이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새 창조에서 맡은 미래의 역할과 이미 주님으로 높아지신 그분의 현재의 지위, 둘 다를 얘기하기 위해, 메시아에 대해 그리고 참 인간에 대해 말하는 이들 본문을 하나로 엮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의 논증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지만 히브리서가 덧붙이는 내용은, 시편 8편에 의하면, 이는 메시아가 천사보다 뛰어나다는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히브리서 저자의 논증의 중요한 부분인 것입니다.
2:7,”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 만물을 그 발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였으니 만물로 그에게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본문에서 저자는 하나님이 인류 전체를 위해 지정하신 지위를 예수님이 이미 획득하셨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독자들은 앞으로 히브리서의 전형적인 구약성경 이해 방식이 될 논점을 접하고 있습니다. 시편은 인류 천체가 세상을 다스리는 권위를 지녔고 ”만물이 그분께 복종한다”라고” 말합니다(시 22:29). 하지만 본문이 말하듯이 이 일은 분명히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질서와 정의가 온 창조 세계에 깃들도록 세상을 다스리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물은 아직 반(半) 혼돈(半)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시편이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대답은 이미 그 일이 예수님에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인류의 대표자십니다. 그분은 지상 사역, 고난과 죽음이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지만 이후 주님으로 높아지심으로써 태초부터 인류에게 지정된 그 역할을 맡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머지 우리보다 앞서 하나님의 미래, 곧 질서와 정의, 즉 구원하는 질서와 치유하는 정의가 세상에 임하게 될 미래로 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높아지심,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우리도 그것을 경축하며 그 빛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은 히브리서 전체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에수님께, 오직 그분께만 일어난 일이 어떻게 나머지 우리와 관련이 있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대표자시란 것입니다.
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자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의회 인주주의에서 각 지역의 유권자들은 그 나라의 중앙 의회에서 자신들을 대표할 사람을 선출합니다. 그래서 선출된 사람은 대표자로 또한 그들의 대리인으로 행동함으로써 자신을 선출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이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메시아요 세상의 참 주님으로 말할 때, 이와 비슷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서 그들을 대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어 이스라엘은 온 세상을 대표할 사람들이 되도록 계획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또한 훨씬 더 큰 공동체를 대표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그들을 대신해 그들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그들을 위해 하신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는 본문에서 그것을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곧 예수님은 죽음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히브리서의 상당 분량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고, 그 의미가 무엇인가 하는 데 할애될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미 죽음을 해결하셨고 또 의로운 주님으로 이미 세상을 다스리고 계신다는 기독교의 중추적인 사실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세상을 다스리는 주님의 삶을 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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