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히브리서강해]#3. 2:1-4. "성령이 주신 것"

2024. 10. 8. 16:59히브리서강해

 

앞 장에서 예언자와 천사와 비교하여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한 저자는 계속해서 그리스도만이 예배와 순종의 대상임을 밝힘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고난 받으심으로 잠시동안 낮춰지신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이 본장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에게 순종치 않는 것에 대해 경고의 성격을 띠는 훈계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율법에 불순종하는 이들을 위한 경고와 처벌 규정을 담고 있는, 천사들을 통해 주어진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 사이의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흔히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은 위협적인것인 데 반해 예수님의 복음은 달래고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이 대조를 이해해 왔습니다. 이런 이해에도 상당한 진리가 담겨 있지만, 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다른 면을 망각한다면, 우리는 복음을 그 진면목데로 상쾌하고 도전적이고 삶을 변화시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아니라 한낱 포근한 담요로 만들고 만다는 것입니다. 만약 왕이나 대통령, 황제, 수상 혹은 누구든 당신의 나라에서 중요한 사람이 특사를 통해 당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면 당신은 당연히 주목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당신을 보러 직접 나타난다면, 당신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군대에 갔다온 남자들은 잘 알 것입니다. VIP가 방문하면 그 부대는 어떤 상황이었는지, 난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특사, 즉 천사를 통해 전달된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메시지에서는 왕이 우리에게 직접 얘기하기 위해 친히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너무 분주하고 바쁘다는 핑계로 그분에게 가서 얘기를 나눌 수 없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에 히브리서 저자는 누구라도 그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도록 예수님의 오심, 그리고 그분이 그들에게 주신 메시지가 실은 왕이 직접 방문이었다는 명백한 증거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직접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뒤 그것만큼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 자신이 그것에 대해 증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메시지가 전해졌을 때, 표징과 기사, 치유의 기적을 비롯한 다른 여러 가지 일들, 뜻밖의 회심, 가정과 회당 공동체, 마을의 변화 등 여러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2:1-2,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저자는 하나님이 이미 천사들을 통해 율법을 보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모세를 통한 시내산 율법을 말하고 있을 것입니다(33:2). 율법이 천사들의 중재를 거쳐 주어졌다는 것은 중간 시대의 유대교와 사도시대의 그리스도교에서는 분명한 사실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무시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만약 그들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강력한 어떤 것에 귀 기울이면서 그 율법을 거절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하나님은 그들의 죄와 불의에서 구출되는 데, 즉 구원을 받는 것에 대해 정말 관심이 없다고 결론을 내리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죄와 불의가 우리들 안팎에서 우리를 삼키려고 노리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출하시는 것을 포기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이에 저자는 우리가 들은 것에서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유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기독교 가정이나 정규 교회 공동체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긴장을 늦추고 다른 사람들이 대신 기도하고, 생각하고, 진지한 일을 하도록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즉 신앙생활을 수동적으로 참가하되 너무 많은 노력을 거기에 쏟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겠다는 생각인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수동적인 신앙생활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흘러 떠내려 갈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끔씩 스스로를 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은 떠밀려 다니는 부류인가, 아니면 메시지를 잘 안다고 자부하거나 자만하기보다는 메시지에 더 깊이 주의하며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한 번씩 깊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2:3-4,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오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저자는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 메시지는 믿었을 때, 그들은 신기한 새 에너지가 자기들 안에 있음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온화하고 요동치는 인격적 임재가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일을 하게 했고, 그들의 머릿속에 새로운 생각을 집어넣었고, 안에서부터 밖까지 달라진 사람이 되도록 그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최초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 안에 있는 이 인격적 임재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알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 예수님 안에서만 아니라 자신들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임재의 선물인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사람들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자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비롯한 다른 한두 본문은 저자가 그것을 당연하게 여김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삶에서 그리고 자신이 속한 교회에서 예수님의 복음 메시지가 진리이고 능력임을 보여 주는 어떤 증거가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증거가 없다면 복음의 진리에 대해 너무나 경솔하게 여기며 떠밀려 다닌 것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나의 신앙생활에서 성령의 임재함을 느끼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