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출애굽기강해]#55. 20:16. "거짓 증거말라"

2022. 4. 22. 12:06출애굽기강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예수님은 마태복음 5장 33절에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할 것을 지킬니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은 레위기 19: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를 근거한 말씀으로 자기의 편견을 붙여서 꾸며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이며 거짓된 것을 거짓되지 아니한 것 같이 가리워서는 안 되며 진실한 신앙과 양심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 사랑에 근거하여서만 진실하게 말할 수 있으며 바른 증거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또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 4:29)에서 말하였습니다.

 제9 계명은 거짓말의 최대 희생자가 바로 거짓말의 대상이 된 그 이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짓말이란 전혀 있을 수 없습니다. 일단 거짓 정보를 퍼뜨리면 그것은 적어도 그 정보를 듣는 사람의 능력, 즉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시킵니다. 이 계명은 이웃의 평판뿐 아니라 그 이웃 사람 자신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에 대한 히브리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으로 반응하거나 응답하지 말라"입니다. 여기서 '응답하다'의 히브리어 동사인 '아나'는 '압제하다, 괴롭히다, 창피 주다, 경멸하다'는 뜻도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거짓말함으로써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진실함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양심의 증거는 개인의 감정이나 사회관계, 또는 물질의 유혹보다 더 강한 것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항상 진실이 밝혀지고 억울하게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없을 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동행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최후의 보루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입니다. 법과 사회 제도가 왜곡되어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의 양심만 살아 있다면 누구도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무서운 것은 그리스도인의 양심이 병들고 목회자의 양심이 죽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이방인 교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습니다. 엡 4: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진실한 교제 역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자신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할 때 과장되게 말하거나 자기를 주장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아첨의 말을 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만약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온전한 사람이며 온몸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자라고 말합니다. 마치 작은 불씨가 온 집을 태우는 것처럼 사람의 혀가 모든 것을 태워 버린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성인군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우리의 영혼과 인격이지만 우리의 '죄의 몸'은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몸'은 우리의 본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의 본성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더 이상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권세에서 해방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능과만 싸우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6장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것만 알면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함께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일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망은 율법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율법이 없으면 우리의 삶은 엉망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성령과 함께 삶을 살아보지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면 우리는 죄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싫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의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능과는 매일 싸워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되는 과정인 것입니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 또한 우리가 하나님과의 동행을 해야만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결국 답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동행입니다.

 이 시간에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나는 하루에 몇 시간을 하나님을 생각하고 있는가? 한 번 점검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