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15. 12:02ㆍ출애굽기강해
오 오늘 본문 말씀은 드디어 모세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여서 애굽으로 돌아가는 내용입니다. 근데 왜 모세는 자기가 경험한 신비한 체험을 장인이나 가족에게 이야기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모세가 경험한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믿는 것과 아는 것은 엄청난 차이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을 믿음의 수준에서 하나님을 아는 수준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야 한다는 것인가? 바로 영성훈련을 통해서입니다. '영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하는 수행입니다. 기도, 성경 읽기, 묵상 등을 통해서 일상생활에서 늘 하나님과 함께 하다 보면 하나님은 어느 날 갑자기 우리에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점진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 또한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우리들의 미래는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들을 인도하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우주 어느 공간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기독교는 내세적인 종교가 아니라 현세적인 종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세는 오늘 본문에서 지팡이를 들고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40년 동안 처가살이를 하는 동안 재산을 얼마 모았는지 이런 것은 궁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경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지팡이'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지팡이'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경험, 우리는 권력, 우리의 경제력, 우리의 학벌 이런 것들은 필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지팡이' 뿐이라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4:18, "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내 형제'는 좁은 의미로는 부모, 형제, 친지들을 넓은 의미로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의미합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자기 백성들과 함께 살겠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장인에게 여행목적을 밝히지 않은 것은 장인이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4:19-20,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죽었느니라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18절에 이어서 '돌아가라'는 말이 또 다시 나오는 것은 모세가 일말의 두려움이 있는 모세를 죽이려는 자들이 다 죽었으니까 안심하고 애굽으로 돌아가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용하실 때에는 우리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의 가족을 데리고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으로 떠납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일에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치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역자의 소명인 것입니다.
4: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근데 왜 하나님은 바로가 하나님의 이적을 보고도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신다는 것일까 그냥 이적을 한 번 보고 모세의 말을 들어주면 좋을 텐데~그것은 바로의 마음이 강퍅할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 고생스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등 따시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신앙은 고난을 당했을 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4:22-23,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본절은 하나님이 세상 권세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세상 권세와 하나님 나라와의 대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애굽왕 바로는 '태양신의 아들'로 불리어져서 하나님의 장자와 서로 대립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을 독자로 부르지 않고 장자로 부른 것은 차자도 있을 것임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후일 이방인에 대한 소명도 내포되어 있는 말입니다.
요즘은 신앙생활 하기가 참 힘든 시기입니다. 앞으로는 더 힘든 시기일 것입니다. 성도들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새로운 신자들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할 것인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기독교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그 시대의 문화에 따라 여러가지 운동이나 주의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의 경험도 아니고 우리의 재력도 아니고 우리의 학벌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지팡이'가 필요할 뿐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이런 코로나 사태 또한 우리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순탄할 때에는 굳이 하나님이 없어도 잘 되니까 사람들은 하나님을 필요치 않아합니다. 그러나 고난이 닥쳐와서 힘든 상황이 오면 우리들은 하나님을 만날 기회가 더 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지팡이를 선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다가가야 합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 부르짖어봅시다. “하나님 저에게도 지팡이를 주세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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