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0. 26. 07:54ㆍ누가복음강해
 
에스겔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확대 가거나 강탈하거나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주지 아니하거나 우상에게 눈을 들거나 가증한 일을 행하거나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거나 이자를 받거나 할진대 그가 살겠느냐 결코 살지 못하리니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였은즉 반드시 죽을지라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12-13).
요즘 한 국회의원이 다른 당 국회의원에게 망말을 하고 이런 변명을 했습니다.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다". 유대인들이 바로 이런 케이스인 것 같습니다. 그들은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율법의 정신은 보지 않고 율법의 행위만 집착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스겔의 말이 오늘날 유대인들이 전 세계의 금융을 지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중세까지 남에게 돈을 빌려 주고 이자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고 고리대금업자들을 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같은 동족으로 해석을 하여서 다른 이방인들에게서 고리대금업을 한 것입니다. 십자군 전쟁에서 유대인들이 많이 죽은 이유 또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교황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방인은 죽여도 된다고 하자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린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학살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왜 예수님이 이 말씀을 전했는가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해석을 하고자 합니다.
본문 말씀은 에스겔에서 나온 말씀과 비슷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을 신약 그 당시 문화에 맞게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렇게나 이야기했던 이야기를 모를까? 그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달을 보지 않고 그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을 본 것입니다. 즉 율법의 정신을 보지 않고 행위만 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사역은 바로 그 달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을 전하시려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이 그렇게나 구약 선지자들을 통하여 이야기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정의'와 '공의'를 예수님이 쉼게 풀이를 하여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유대인들는 처음 들어보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문화는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정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분별한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율법의 행위로만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과히 혁명적인 말씀인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이런 좋은 말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 예수님은 이런 좋은 말씀을 하면 사람들이 그렇게 따라 줄 것으로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은 당연히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왜냐하면 구약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제자들은 이 말씀대로 행했을까요? 제자들 또한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모여 기도할 때 성령 세례를 받기 전까지는 일반 유대인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들 또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렸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들에게 성령 세례를 주기 위함입니다. 제자들은 성령 세례를 받고 난 후에 다른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났다는 것입니다. 그럼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다닐 때에는 거듭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를 다닙니다. 그러면 그들 중에는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 됩니다. 왜 이런 말을 할까요? 거듭난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상고하며 하루하루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금에 교회가 욕을 먹는 것은 기독교인들이 거듭난 자가 많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다른 종교에서도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틀립니다. 다른 종교는 자기들이 고난이나 수행을 통해서 이것을 지키려고 하지만 기독교는 성령세레를 받음으로써 거듭 난자들이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저 또한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이 말씀대로 살 수 있을까? 한두 번은 할 수 있겠지 그러나 이 말씀대로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거듭나고 보니 나도 모르게 이것을 실행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또한 할 수 있겠다는 것을 느끼면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로 하여금 그렇게 할 수 있게 하신 분은 내 안에 내재하고 계시는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다는 것입니다. 나는 나의 본성으로 절대로 그렇게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인 것입니다. 나의 본성은 이런 좋은 일을 하지 못하는데 성령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본성이 성령 하나님을 이기면 나는 원수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하나님이 나의 본성을 이기면 나는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순교 또한 같은 원리인 것입니다. 2세기에는 순교가 유행했었습니다. 많은 순교자가 있었고 진정한 신앙인은 순교를 해야 한다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순교 또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하는 것이 순교이지 자기의 '의'로 하는 것은 순교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의 '의'로 하는 순교는 자기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죽어서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을 때 "주님 저는 주님을 위하여 순교를 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좋은 상급을 주십시오"라고 요구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현재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달은 무엇이고 손가락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정의'와 '공의'가 다스리는 나라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우리들은 자꾸만 죽어서 천당에 가는 것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살아서 이 세상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욕을 해도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웃을 사랑을 할려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 사랑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다 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진정으로 성령 세레를 받았는가?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하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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