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8. 07:57ㆍ누가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게 제자도에 관하여 말씀하는 내용입니다.
14:25,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고 있을 때 많은 무리가 따랐다는 것은 그만큼 예수님의 인기가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행한 이적을 보기 위하여 따를 수도 있었으며 또는 절기에 맞추어 예루살렘으로 가는 순례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다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서 메시아로서 왕으로 등극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리들의 빗나간 기대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를 느끼고 가르침을 시작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기를 따르려면 가족과 자신 목숨까지 미워하고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합니다(26-27). 그 당시 유대 사회는 모든 것이 이분법으로 통하는 사회였습니다. 선과 악, 어둠과 빛, 천사와 악마, 천국과 지옥등 이것은 유대교의 영향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가족과 자기 목숨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인생의 모든 선택에 있어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 우선권을 두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십자가형을 당하는 죄수는 자기 십자가를 직접 자기가 지고 형장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려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한 뜻은 그만큼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가르치고 있는 하나님 나라는 그 당시 유대 사회에서 기대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와는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많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자신들의 생사화복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 교인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교인들은 고난을 당하면 성경 구절에서 합당한 것을 찾아내어서 기도를 합니다. 그 구절이 문맥상 어떤 내용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문자적으로 고난을 이기게 해주는 내용이면 그 구절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를 합니다. 그러다가 그 고난이 지나가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것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고난을 통하여 관계를 회복하기를 원하시고 교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위하여 사용을 할 뿐입니다. 이것은 오늘 본문 말씀의 무리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을 내 안에 모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함께 동행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다시금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전하는 뜻을 찾아내고 또한 그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돈돈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고 응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다음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고 교제인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공동체의 특징인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사귐~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우리는 기도응답을 통해 여기까지 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망대를 세우다가 그 비용을 잘 못 계산하여 기초만 세우다가 포기하여 망신을 당한다는 비유로 자신을 따를 때 신중을 기하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28-30). 또한 예수님은 전쟁에 나갈 때 이길 수 있는가를 따져보고 만약에 승산이 없다면 화친을 요청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31-32). 이처럼 제자가 된다고 하는 것은 어렵다고 예수님은 이야기를 하십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과 전쟁은 예수님이 시대에 전달하는 은밀한 경고라고 신학자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성은 예루살렘 성전을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헤롯이 건설하고 있는 성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은 자기 집을 버렸다고 이미 경고를 했습니다(13:35). 또한 전쟁은 로마와의 전쟁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이 원하는 것은 로마에게서 해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로마는 이스라엘이 상대하기는 너무나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자존심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이 로마와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사상이 팽배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것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힘으로써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사상을 따르려고 한다는 것은 자기 가족들과도 헤어질 만큼 그리고 자신의 십자가를 질 만큼 힘들다고 예수님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본문의 소유는 앞절의 문맥상으로 보면 자기들의 '사고'. 자기들의 '자아'. 자기들의 생각들을 버리지 못하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대의 정신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저번 말씀에서 '회개'라고 했습니다. 즉 회개를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이됩니다.
14:34-35, "소금이 좋은 것이나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내버리느니라"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시대의 소금이 된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없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음식의 부패도 막아주고 음식을 맛이게 만드는 재료인 것입니다. 그런데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다는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시대의 사상에 동조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시대의 정신은 무엇일까? 맘몬 사상일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시대의 정신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소금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맘몬신이 교회까지 장악을 한 것 같습니다. 교인들 또한 맘몬신에게 정복을 당한 것을 그들의 기도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소금이 맛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온 세상이 맘몬신에 지배를 받고 있는 현 시대에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은 이 시대의 조류에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를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 자리에 갖다 놓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대의 소금이 되려고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리에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소금의 사명인 것입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이 시간에 생각해봅시다. 나는 소금으로써 그 맛을 내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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