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누가복음강해]#53. 15:1-10. "잃어버린 양과 동전의 비유"

2021. 12. 9. 08:14누가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말씀입니다. 
 15:1-2,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세리와 죄인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주된 관심은 의인과 죄인들을 엄격히 분리해서 이스라엘이 부정한 자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게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부정한 자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민족의 정체성과 안위를 위협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된 주요 요인이 됩니다. 세상의 권력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예수님이 뒤집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우리들이 생각하는 죽어서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서 천당에 가고 지옥에 간다는 생각을 하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다들 천당에 가는 부류의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고 회칠 한 무덤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전하는 복음은 우리들이 죽어서 천국에 가려고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는 것이 바로 '회개'한 성도들의 삶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이런 차원에서 해석을 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우선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부류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자아나 사상을 내려 놓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기 소유를 내려놓지 못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14:33).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가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세리들과 죄인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 비주류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멸시와 천대를 받았으며 신앙공동체에도 같이 어울리지도 못했으며 식사도 초대받지 못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긍휼 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이들의 내면은 뭔가 갈급함이 가득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들도 이스라엘 백성인데 이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주류 세력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들을 주류사회에 격리를 시켰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예수님이 나를 따르는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라고 말씀을 하니 이들의 가슴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 타오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온 것입니다. 
 3-7절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비유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백성을 다시 찾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다고 하는 것(19:10)은 누가복음에서 나타난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 비유에서 등장하는 목장 주인은 그리 큰 부자는 아닙니다. 유대법에는 보통 300마리 정도 이상이 되어야지 부자에 속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소규모 양을 치는 주인에게는 한 마리의 양은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99마리의 양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한 마리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정이 바로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의 찾은 심정인 것입니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6절). 아마도 이 주인은 이웃과 잔치를 하려면 양 한 마리보다 더 많은 돈을 잔치에 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 명의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성도가 생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기 싫어한다는 뜻이 될 수 있습니다. 
 15:7, "이와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여기서 의인 아흔아홉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아마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아닐까? 그들은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에서는 이런 의인 아흔아홉 보다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회개한 죄인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8-10절까지는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의 비유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유대 여인에게 있어서 열 드라크마는 결혼반지에 해당합니다. 이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할 때 결혼 지참금 형식으로 드라크마 열 닢을 줄에 꿰어 주는 데 여인은 그것으로 자신의 머리에 장식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열 드라크마는 여인의 지참금이기 때문에 귀중한 재산이며 비상금이 됩니다. 그래서 유대 여인들은 잠을 잘 때에도 이를 결코 풀어놓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열 드라크마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결코 장신구의 역할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여인은 부지런히 그것을 찾았을 것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하루치의 품삯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 드라크마를 찾았다고 이웃과 잔치를 하면 도리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만큼 한 명의 회개한 자는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성도들은 소중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니니라"(10절)
 우리는 지금까지 복음은 죽어서 심판을 받고 천국에 가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음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길을 십자가의 길인데 어떻게 복음(good news)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구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 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나 자신을 위한 종교가 아닌 세상을 위한 종교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가 골고루 분배가 되고 전쟁이 없는 하나님의 공의가 평화롭게 널리 펴져서 창조질서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살아서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고 죽으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 묵상을 해봅시다. 나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신앙인가를~ 그냥 회개하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인지~ 회개한 한 마리의 양인지를~ 여기서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아흔아홉마리에 속한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죽다가 깨어나도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만큼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