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35. 10:17-33. "베드로가 고넬료에 가다"

2022. 4. 19. 11:29사도행전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이방인들의 오순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안에 성령이 부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이방인들의 차별이 완전히 다 없어졌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하고 계십니다. 이때까지 이방인과 유대인들 사이에는 많은 편견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먹지 않는 이유로 제시한 것 중 하나는, 이방인들은 여자들에게 강제로 낙태를 시켜서 죽은 태아를 배수구에 버리거나 마루 밑에 묻어 두기 때문에 집이 오염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이 돼지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또한 매주 하루는 일을 쉬어야 한다고 우기기 때문에, 이교의 신전에서 여는 파티나 신들이나 황제들을 경축하기 위해 벌이는 경기 같은 일상적 사회 활동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에, 거만하고 비사회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나 재미있는 비방은 유대인들이 이교의 신전에서 물건을 훔친다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교의 신들을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성전에 있는 물건들은 주인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가져 갔던 것입니다.

 10:·17-20 “베드로가 본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내가 저희를 보내였느니라” 8년 된 중풍환자를 일으키라 하시고 죽은 다비다를 살리라고 하셨던 그 성령께서 너를 찾아온 이방인을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인 고넬료와 그 가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 받는 것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또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내려가서 ‘무슨 일로 나를 찾느냐?’고 물으니 그 사람들은 ‘고넬료라는 사람이 자기들을 보내었다’고 하면서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서 당신을 청하여 말씀을 들으려고 우리를 보내었다’고 했습니다.

 10:28-29,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성경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을 통해 하나님의 빛이 비칠 수 있도록 구별되어야 하고, 거룩해야 하고 다른 민족과 달라야 한다고 명령했습니다. 바울을 포함한 신약의 저자들은 기본 금지 사항을 담고 있는 모세의 율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말씀이고 그렇게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울과 그 외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비추어 그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특정 시기에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으로 가는 동안에 일어난 생각의 전환도 그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세상의 빛이 될 것이라는 성경의 약속을 그는 당연히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다른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것처럼 하나님의 새 세상, 예수님을 통해 열린 메시아의 세상에 참여하기 원하는 비유대인은 자기 민족을 버리고 유대교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온전한 유대인의 정체성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의 생각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우리의 유익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해석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10:30-31,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고넬료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예배하는 경건한 사람이었던 이유는 로마의 신들에 염증이 나서 진정한 신으로 보이는 신을 따르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고넬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새 세상에 대한 초대입니다. 그 초대에 응하는 것은 회개, 용서, 세례, 그리고 성령을 통해 변화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를 부른 것입니다.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고넬료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입니다. 스데반의 연설에서 말한 것처럼 예수님으로 인하여 성전이 필요 없고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은혜와 자비로 자기 백성을 만나는 장소이자 통로는 예수님인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고넬료를 비롯한 많은 이방인들이 이제 예루살렘의 성전에 가지 않아도 그리고 회당에 가지 않아도 마음껏 하나님을 경배하고 예배들 들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적이고 기쁠까?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하신 일을 이스라엘을 통해 마침내 행하실 그날에 대비해 이스라엘을 구별하여 하나님 자신의 것으로 두기 위한 조처였고, 그것은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통해 그리고 성령에 의해 하나님은 그 계획을 실행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모두 똑같은 조건에서 하나님의 가족이 될 수 있는 때가 온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믿음에 의한 칭의, 즉, 이신칭의의 핵심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고넬료같은 하나님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