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사도행전강해]#37. 11:1-18. "논쟁과 변호"

2022. 4. 25. 11:02사도행전강해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또 그 말씀을 전하는 도중에 성령이 임한 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담을 허무시고 온 세상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심을 나타내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베드로가 이방인들을 찾아가서 말씀을 전하고 교제한 것은 율법을 어긴 것이라 하여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11:1-3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이방인의 집에 보내셔서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것은 이제 하나님을 믿는데 인종이나 민족의 차별은 완전히 없어졌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율법을 어겼다고 하면서, 비방하고 흠을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믿지 않는 유대교 엄격 주의자들이 아니라 예루살렘 신자들 안에 있는 강경 노선 그룹이었습니다. 6장에서부터 이미 예루살렘 공동체 안에 불안과 분열이 있었는데, 이제는 더 심하고 잠재적으로 더 심각한 분열을 초래하는 불화가 시작되었고 앞으로 주요 문제로 부각이 될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가이샤라에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성령께서 고넬료의 집에 가서 그의 환대를 받고 그와 그의 가족에게 세례를 주게 하셨는지 일일이 설명합니다. 이는 할례파 입장에서는 금기를 깨는 일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는 과정 없이 예수님의 가족으로 온전히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할례파 그들이 가진 세계관에서는 엄청난 혼란일 수밖에 없는 큰 사건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이야기한 것은 앞 장에서 나온 이야기와 매우 비슷합니다. 그러면 누가는 왜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할까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누가는 지금 할례나 음식 금기와 같은 유대인의 정체성을 표시하는 특징을 취할 필요 없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재구성된 하나님의 백성 안으로 이방인을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적이고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앞 장에서 말한 것에다 작지만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였다는 것입니다.

 11: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이 구원받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 누가는 고넬료가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한 삶을 산다고 해도 구원을 받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듯이 인간들은 선악과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죄’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그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죄’ 해결을 위하여 예수님이 오신 것이고 이것을 믿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는 15절에서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10:34-43까지 베드로가 이야기하고 난 후에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와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성령의 주권과 놀라운 활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16절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마지막 순간에(행 1:5).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었던 것처럼 곧 그들에게 성령 세례가 임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이것은 10장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자기 세대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방법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새로운 일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시대의 사회적 문화와 정치와 경제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맞게끔 지혜롭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는 그 당시 상황을 알아야지 오늘 본문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40~50년대 예루살렘은 사회적이나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결국 거대한 반란으로 이어졌고 이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전쟁으로 이어져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에 함락이 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약 100만 명이 살해되고 9만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같이 둘러앉아 할례와 식사 율법의 가치에 대해 추상적 토론을 한 것이 아닙니다. 민족 전체가 강한 압박을 받고 있었고 그것이 갈수록 고조되던 시기에 그런 가치들은 민족의 표지와도 같았던 것입니다. 이방인을 동일한 형제와 자매로 맞이하는 일은 마치 적과 친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 할례파들 에게는 할례와 식사 율법을 포함해 ‘율법에 대해 열심을 내는 것’만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그분의 뜻에 부합하는 일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성경을 해석할 때 그 당시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전체 상황을 생각해야 합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복음을 사람들의 상황에 맞게끔 지혜롭게 전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