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3. 17:23ㆍ사도행전강해
오늘 본문은 회의적인 사람들에게는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난 이야기를 종교적 전설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기도하는 사람들이나 로데의 행동으로 보아서는 즉, 절망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런 가벼운 이야기를 지어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는 베드로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이 놀랍게 일하시는 것을 보았고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던 바로 그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5장에서 사도들이 모두 감옥에서 풀려난 이야기를 전한 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여서 기도를 하니까 베드로가 풀려났다고 이야기를 하면 이것은 전설이 될 수 있지만 도리어 본문에서 이들은 베드로가 풀려났는 것을 보고, 다시 말하면 그들의 기도가 이루어졌는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는 것을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진실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 알면 알수록 깊이가 있고 심우한 종교인 것입니다.
12:6,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베드로 한 사람을 지키는데 무려 네 명의 군사가 네 패로 나누어서 모두 열여섯 명이 지켰습니다. 그리고 잠을 잘 때에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두 쇠사슬을 묶어서 군사 두 명 사이에서 잤습니다. 이것은 어느 누가 봐도 베드로를 도망치게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자기 힘으로 도망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내일이면 죽을 수밖에 없는 암담한 상황에 놓여있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그곳에서 탈출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7~10절까지는 베드로의 탈출과정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에서 그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는 것은 천사의 기이한 방문에 대한 베드로의 태도입니다. “그는 천사가 나타나서 하는 이 모든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환상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도 우리처럼 환상이나 꿈과 구체적 현실의 차이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때로 사람들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원시적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환상과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시공간의 차이를 몰랐다는 식으로 글을 씁니다. 그런 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당연히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적 상황이 아니고 환상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본문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마가의 집에 갔을 때 그 집에서 기도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12~16절까지 말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반응은 “그러면 베드로의 천사인가 보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무엇일까을 알아야만 이 뜻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베드로가 감옥에서 죽임을 당해서 그의 ‘천사’가 그들을 찾아온 것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현재든 예전이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부활 후에 나타나신 것은 바로 이런 현상이라고 종종 추정했다는 것입니다. 애석하게 고인이 된 친구, 확실하게 죽은 그 친구가 ‘천사’의 방문 혹은 ‘영적’ 방문 같은 것을 하는데 그것이 당시에는 정말로 ‘실제’ 같지만 그 몸은 무덤에 있는 것이 확실한 그런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을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그것이 ‘부활’과는 완전히 다른 현상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12:17, “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베드로는 아침이 되면 자신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에서 오래 머물면 자신도 잡히고 다른 사람들도 고생할 것을 잘 알았기에 다른 곳으로 떠나야 했던 것입니다. 누가는 베드로가 어디로 갔다는 것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본문에서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나오는 것을 보면 자연히 야고보가 베드로를 대신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이끌 지도자란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12: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헤롯이 떠나므로 이제 갓 태어난 교회는 헤롯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 당시 예수님을 추종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정당한 메시아, 유대인의 왕으로 선언했고, 현재 유대인의 왕은 그것이 불쾌해 그들을 막으려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교회의 기도가 결국 이기고, 가짜 왕에 맞서 진짜 왕의 정당성을 입증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세상 권세와의 싸움입니다. 그러면 지금의 세상 권세는 무엇일까? 바로 맘몬신일 것입니다. 모든 것이 맘몬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 맘몬신이 이제는 교회 안에서까지 침범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는가는 우리들이 하는 기도의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이 시간 나는 혹시 맘몬신을 섬기고 있는지 한 번 진지하게 점검을 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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