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고린도후서강해]#31. 11:21하-33. "약함을 자랑하다"

2024. 6. 18. 10:40데살로니가강해/고린도후서강해

 

그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였고 다른 여러 식민지처럼 로마의 모(母)도시보다 훨씬 더 모(母)도시를 닮으려고 기를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로마 문화가 깊이 잠식을 했으므로 지역 주민들은 그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 당시 로마 문화는 모든 공적인 인물들이 자신의 남자다운 업적을 나열하는 것을 즐겨했다고 합니다. 즉 나는 이런저런 공직을 거쳤다. 나는 무슨무슨 해에 검찰관이었다. 나는 누구누구가 집정관이었을 때 법무관이었다. 나는 이런저런 속주의 충독이었다. 아니면 나는 유명한 극장을 지었다는 등 세간의 이목을 끄는 유명한 공인들의 이러했다면 동일한 관행이 사회적 지위 말단에까지 영향을 미쳤을 것이고, 고위직에 올라 본 적 없는 사람들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영역에서 이룬 자신만의 업적을 열망했을 것입니다. 고린도에 보내는 두 편지 곳곳에서 바울은 신생 교회가 자신들의 도시와 지역의 일상적인 문화에 물들어 가는 위험에 처해 있음을 인식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고린도 교회에 영향을 끼친 교사들이 정확히 그 방향으로 향해 갔던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치켜세웠고,, 그들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고, 그들은 명성과 성공과 과시적인 웅변 문화에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그들에게 주는 대답으로 자신의 업적을 나열하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열하는 업적의 내용은 로마 세계의 일반 시민이라면 자랑하기는커녕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웠을 내용입니다.

 11:21-23, ”그러나 누가 무슨 일에 담대하면 어리석은 말이나마 나도 담대하리라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담대하게 자랑하는 것에 대해 자신도 그들에게 못지않게 얼마든지 자랑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특히 육적인 면에서도 거짓 사도들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인은 원래 유브라데 강 건너편에서 온 자“(14:13)를 의미하며, 순수한 혈통을 가진 완전한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이 이스라엘인이라고 역설을 하는데, 히브리인은 인종적인 명칭이라면 이스라엘인은 종교적인 명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신은 단지 야곱의 자손(32:28)으서의 하나님의 백성이라기보다는 믿음에 의한 진정한 이스라엘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울은 자신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언약(12:2)은 육의 자손에 대한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해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란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을 더욱더 그리스도일꾼이라고 강조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리스도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의 표현은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부끄러움을 모르는“의 의미입니다. 즉 자신은 부끄러움을 느끼거나 체면을 차리지 않고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어 어떻게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고난을 당했는가를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것은 여기에 나오는 경험들은 그가 승리했거나 성공한 것들(19:11)이 아니라 무력하게 패배와 고난과 죽음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하셨던 예수님처럼(13:31) 자신의 약함과 고난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6:14). 바울은 반대자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한 것이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많다는 것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고난은 28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11:29-31,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아니하던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 주 예수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 내가 거짓말 아니하는 것을 아시느니라“바울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한 지체가 고통당하면 다른 지체도 고통당하는 유기적 조직체로 설명 헸는데(엡(엡 1:22), 실제로 그는 약한 자가 되어 약한 자의 슬픔과 고통을 함께 맛보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도가 넘어져 죄에 빠지게 된다면 자신의 속은 애가 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일꾼이 되려면 상대방처럼 느낄 수 있는 예민한 공감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는 것은 그 당시 시대조류와 맞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인간적으로 약해질수록 영적으로 더욱 강해진다는 것을 체험을 통해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자신이 하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라면서 그 당시 유대인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진실성을 호소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고 있는 것입니다(3:14, 9:1).

 11:32-33, ”다메석에서 아레다 왕의 고관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켰으나 나는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본문에 나오는 ”아레다 왕은 왕의 이름이 아니라 홍해로부터 유프라테스 강까지의 지역을 지배한 왕국의 왕의 칭호였다고 합니다. 마치 애굽의 바로와 같은 것입니다. 그 당시 그 왕국의 수도는 페트라였지만 다메섹은 고위 관리를 두어 다스렸던 것 같습니다. 그 고위 관리는 유대인의 사주를 받아 바울을 체포하려고 했던 것입니다(9:24). 바울은 자신이 창문을 통해 광주리를 타고 도망을 쳤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수치스럽고 불명예스러운 것이지만 그러나 그런 약한 모습을 자랑함으로써 자신의 말이 진실하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날 자신의 자필 이력서를 쓰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력서는 자신을 실격시킬 일들만 나열한 것입니다. 바울이 겪은 일들은 고대 세계에서의 사람들이 마땅히 피해야 할 불미스러운 인물로 평가될 뿐만 아니라 신들조차 당신에게 진노한 것은 분명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이런 것들을 자랑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핵심인 것입니다. 즉 내가 불가피하게 자랑해야 한다면, 나는 내가 얼마나 약한지 보여 주는 일들을 자랑하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상식적인 문화적 가치를 완전히 뒤집어 생각하는 법, 그렇게 함으로써 메시아의 참된 종으로 바로잡힌 삶을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의 참된 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