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9. 16:09ㆍ데살로니가강해
본 본서는 바울 서신 중 최초로 기록되었으며 데살로니가 교회는 빌립보에 이어 두 번째로 유럽지역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는 “재림의 서신”이라고 불릴 만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 재림에 대해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결 서신”이라고 할 만큼 주 안에 굳게 서는 것과 믿음과 사랑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거룩함을 성취할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서의 기록 연대는 사도행전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49년쯤)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니아로 건너가 빌립보에 이어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였습니다. 이후 바울 일행은 남쪽으로 베뢰아. 아테네, 그리고 고린도까지 이동했으며 고린도에서 2년간 체류했는데(51-53년쯤) 그 기간 동안 이 편지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1:1, “바울과 실루아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바울 당시 헬라와 로마 시대에 편지 서두를 쓰는 관례적 방법을 따라 발신인, 수신인, 인사 내용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 세 사람은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함께 데살로니가에 가서 처음으로 그 땅에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15:40). 대개의 경우 바울은 자신을 “사도” 또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지칭했지만 본서와 빌립보서에만 그러한 공적인 명칭을 생략하였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다른 교회들과는 달리 바울에게 호의적이었고 그의 사도직에 대한 도전도 거의 없었으며 또한 실루아노와 디모데를 자신과 동등한 동역자로 소개하려는 겸손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회중이라고 부릅니다. 이 공동체를 다른 모임과 구별 짓는 점은 이 공동체가 특정 장소에 자리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특정 신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신은 하나님, 한 분이신 참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부로 알려졌고, 이제 복음을 통해 예수님은 메시아와 세상의 주로 보내신 분으로 알려졌습니다. 바울의 다른 편지에서도 종종 그러듯이, 첫머리의 단어와 어구에는 그 편지에서 자세히 서술할 주요 내용이 간결하게 담겨 있습니다.
1:2-3,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가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바울은 통상 유대교 회당이나 기도처에서 복음 전파를 시작했지만 그의 메시지를 믿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유대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 편에서 볼 때 복음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이중 장애물을 넘어야 했을 것입니다. 복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에 대한 얼토당토않은 메시지였습니다. 게다가 얼토당토않은 유대의 메시지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하는 바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바울 또한 이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의 일부 사람들은 바울의 메시지를 듣는 동안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상한 능력이 그들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 그 능력은 “성령의 역사”라고 설명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님의 역할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설명하던 바울과 그의 동료들은 메시지가 효력을 발휘하여 그들이 이해하고 그들의 마음과 삶을 변화시키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서 흥분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첫 설교 이후에 그들과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을 뿐이었는데도, 그들이 생명의 표지로 여길 수 있는 세 가지를 이미 보여주었음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입니다. 바울은 이 셋을 여러 곳, 특히 고린도전서 13:13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셋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기초에 대한 바울의 사상과 가르침에서 표준적 내용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이들 하나하나에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믿음은 당신이 열심히 수고해야 하는 어떤 것입니다. 이 수고는 하나님께 인정을 얻기 위해 하는 “율법의 일”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은혜에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수고인 것입니다. 이 말은 복음에 대한 빈틈없이 사고해서, 우리의 생각과 의지를 그에 맞춘다는 의미입니다. 사랑이란 아주 실제적인 것입니다. 사랑에도 힘겨운 육체노동에서 연상되는 것과 비슷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희망에는 인내가 필요한데 그것 역시 힘겹습니다. 그런데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이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바울은 감사의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1:4-5,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이처럼 초기에 그들이 보인 반응과 강한 확신에 대한 생생한 기억은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다는 분명한 증거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어쩌다가 우연히 믿음에 도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그리스도 북부 지방으로 진입하는 교두보와 주변 세상을 밝히는 등대가 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어떻게 믿음과 생명을 이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복음으로 그들을 사로잡으셨다는 굳은 확신을 갖고 있음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이 어떤 사명을 주셨는지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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