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데살로니가강해]#3. 살전 2:1-8.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2024. 4. 2. 11:53데살로니가강해

 

고대 세계에는 방문 판매원에 해당하는 방랑 교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청중에게 참신한 지혜나 통찰, 일종의 마술, 새로운 철학 따위를 제시했다고 합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한 도시에 도착하여 이상한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그런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군중 가운데 눈치 빠른 이들은 강사가 돈주머니를 꺼내 기부금을 요청하는 순간이나. 돈을 내면 개인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들려주겠다고 사람들을 초청하는 순간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교사들이 좋은 평을 얻고, 도시에 널리 알려져 인기를 얻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고 합니다. 이런 그 당시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오늘 본문을 읽으면 좋을 것입니다.

 2: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이 헛되지 않은 줄을 너희가 친히 아나니 너희가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하나님의 복음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라”바울의 사역은 고난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만일 누가 어떤 일을 하고 그에 대해 상당한 대가를 받는다면, 그들이 다음에 다시 그 일을 할 때 돈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고초를 겪고 감옥에 갇혔는데도 다음에 다시 같은 일을 한다면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일을 하게 만드는 강력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바울의 경우가 그랬던 것입니다. 그는 빌립보에서 치욕스러운 대접을 받아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고 데살로니가에 도착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복음을 전할 때도 역시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지만 바울 일행은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엄청난 열정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 본문의 핵심은 바울이 온전한 복음을 전할 때, 과감하고 솔직하고 당당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복음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난은 설교자가 그릇된 이유 때문에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님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고난을 통하여 설교자가 세상을 흔드는 메시지를 선포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힘입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3-4,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 함이라”복음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람의 인정이 아닌 하나님의 인정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복음은 사람들에게는 거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복음은 예수를 믿으면 복 받고 하는 일도 잘 되고 자식들도 공부 잘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나중에 죽어서는 천당에 들어간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오직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란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들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복음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주생태계에 어긋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설교자나 성도들은 하나님이 우리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설교를 하고 그것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이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그런 복음을 군주가 멀리 있는 신민들에게 전할 포고문을 대사에게 위탁하듯이 하나님은 자신에게 복음을 위탁하셨다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5-6,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하는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언하시느니라 또한 우리는 너희에게서든지 다른 이에게서든지 사람에게서는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였노라”바울은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자신들은 떠돌이 철학자들이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행동을 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떠돌이 철학자들이라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즉 먹고살기 위해서 어떻게든 사람들에게 자신들을 돋보이게 하는데 노력을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당시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의 영광을 구하려는 거짓 사도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는 달리 오직 하나님께로만 칭찬을 얻고자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들이 바울에게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그 하나님에게서 나에게 주시는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인 것입니다.

 2:7-8,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마땅히 권위를 주장할 수 있느나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하나님의 복음의 대사로 위탁받은 바울의 책임은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가 어떠하든, 자신에게 어떤 영예나 보상이 있든 없든 메시지 전부를 온전히 전하는 것입니다. 그는 왕의 대사라는 지위 때문에 자신의 중요성을 절대 과대평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을 대할 때 친절과 관심과 애정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기 위해 은밀하게 애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감싸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그들 가운데서 일하는 동안 자신의 사랑이 그들에게 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지고 사역을 한다면, 즉 목회자가 복음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나눌 때 그곳 교회는 바로 천국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깨닫는다면 비로소 우리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과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