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19. 12:05ㆍ로마서강해
본문은 바울이 자신이 왜 로마에 가고 싶어 하는지를 더 자세히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또한 이러한 설명의 일환으로 1-7절에서 이야기한 복음의 효력을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복음의 전령으로 로마에 가고자 한 것입니다. 이는 그가 맡은 직분의 일부이며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복음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은 복음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의', 곧 세계와 인류를 바로잡으시려는 하나님의 오랜 계획을 드러냄으로써 구원을 성취합니다.
1:14-15,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당시 세계는 알렉산더대왕이 전파한 헬라 문화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크게 헬라 말을 쓰고 그 문화 아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고 합니다. 로마는 헬라 문화를 받아들였으므로 헬라인에 속하며, 미개인은 그들의 종족 언어를 쓰는 사람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지혜로운 자들과 어리석은 자들, 교육받은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로 나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에게 바울은 복음을 전파해야 할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에서도 복음을 전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빚진 자처럼 하나님에게 쫓기듯 하면서도 로마에 있는 모든 시민들에게 복음을 전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는 거치는 것이요 헬라인에게는 미련한 것"임을 말했습니다. 복음은 예수님을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가난한 목수의 삶을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을 선포합니다. 물론 세상은 그것을 조롱하고 그것을 비웃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분이 세상의 구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본질상 조롱받기를 싫어합니다. 복음은 철학이 아닙니다. 복음은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철학을 조롱한 적이 없었습니다. 세상은 철학을 매우 잘 배우고 또 놀라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쟁적인 관점을 들고 나오면 겸손한 채 하면서 그러한 것들을 토론합니다. 세상은 그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철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로 선포할 때 또한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 결과는 '구원'입니다. 구원이라는 말을 접할 때 우리는 보통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약 전반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바울은 좀처럼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물론 신약과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백성을 죽음에서 구출하실 것을 믿습니다. 죽음은 패배한 원수여서, 죽음에서 오는 타락과 부패가 우리의 마지막을 주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종국에는 육체가 없는 영의 상태로 하늘에 있을 것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모든 창조 세계를 타락과 부패에서 구출하실 것이란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백성에게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과 같은 새로운 몸을 주심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에서 영광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구원의 완전한 영광은 미래에 나타나겠지만 바울은 이 '구원'이 단지 미래의 일만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구원은 현재를 향하면서 사람들을 죄의 상태에서 구출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괴로움과 박해에서 구출합니다. 구원은 미래의 희망인 동시에 현재의 실재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구원이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올 때 그 구원은 그들이 뒤돌아 볼 수 있는 과거의 사건이 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은 구원을 받았고(칭의), 구원받고 있으며(성화), 구원받을 것입니다(영화). 이 구원은 모든 믿는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적 믿음은 우리가 목격하거나 입증할 수 없는 것을 붙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는 것과 예수님이 진짜 세상의 주님이시라는 것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복음의 메시지가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리라" 하나님은 한 가족을 부르셔서 그들과 사랑과 구속의 협약을 맺으십니다. 흔히 '언약'으로 불리는 이 협약은 하나님이 그들만 사랑하거나 구원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 가족 곧 아브라함의 백성을 부르셔서 세상 나머지 사람들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짊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구원의 정의를 세상에 펼치시고 모든 것을 바로잡기 위해 택하신 방법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은 언제나 수단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온 세상의 악과 부패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고자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가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선언합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공표되면, 그 복음을 통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나타나는지가 밝히 드러난다고 예수님에 관한 복음은 선언합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세상을 바로잡고 우리 또한 바로잡으실 방법이라고, 바울은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의’ 곧 예수님 안에서 드러난, 옛 언약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의 유익을 누리려면,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예언자 하박국의 핵심 구절 2:4절을 인용합니다. 하박국은 이스라엘에게 다가오는 대재앙에 맞서 하나님을 붙들고 신뢰하면서 그분의 신실하심을 믿는 법을 배우라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이 독자들에게 역설하는 요점입니다.
오늘 본문은 루터나 칼바르트나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영감을 받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한 로마서의 중심주제이기도 합니다. 본문을 다시 생각해보면 본문은 지금까지 인간의 귀에 들려진 모든 진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진리에 대한 요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내용을 이 위대한 편지 앞머리에 놓은 것입니다. '복음', 그리고 '믿음' '구원' 참 흥분이 되는 단어들입니다. 이 말씀을 대할 때 나의 마음이 이 단어들로 인하여 설레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로마서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 쉬운 로마서강해]#6. 1:28-32. "타락의 산물" (0) | 2023.09.22 |
---|---|
[읽기 쉬운 로마서강해]#5. 1:24-27. "인간의 타락" (0) | 2023.09.21 |
[읽기 쉬운 로마서강해]#4. 1:18-23. "하나님의 진노" (1) | 2023.09.20 |
[읽기 쉬운 로마서강해]#2. 1:8-13. "바울의 열정" (0) | 2023.09.18 |
[읽기 쉬운 로마서강해]#1. 1:1-7. "인사말" (0) | 2023.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