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로마서강해]#59. 14:7-12. "사나 죽으나 주를 위하여"

2023. 12. 18. 11:47로마서강해

 

여기 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엄격한 양심을 지닌 그리스도인인데 그는 자신의 배경과 양육 과정, 기질 등 모든 것으로 인해 도덕적으로 아주 엄격한 기준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는 한 그리스도인은 아주 악하고 타락한 이방 세계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세계는 철저히 피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기 위해 고기는 만지지도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런데 그리스도인임을 자처하는 어떤 여자가 이방 신전에서 나온 것이 틀림없는 고기를 시장에서 사는 것을 그가 알았다고 예를 들어봅시다. 그는 이 여자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타협한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정죄가 유일한 반응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성 그리스도인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자요 구속자라는 깊고 풍성한 진리를 배워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사거나 요리할 수 있는 모든 고기 조각을 포함하여 온 세계는 그분께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무엇을 만지고 맛보고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외적 규정으로는 참된 거룩함의 핵심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배운 복음의 교훈 가운데 가장 기본적이고 자유로운 것들을 모르는 것 같은 사람들의 비난과 비판에 질려버릴 것입니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그들이 속 좁고 우물 안 개구리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 또한 그들을 업신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 다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각자는 기독교 진리의 한 자락을 분명히 파악하며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이 거기서 받아들인 진리보다 훨씬 위로 올라가 보면, 훨씬 더 분명하게 이해하고 더 알아야 할 진리가 있습니다. 곧 한 분이신 주가 존재하시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흥망성쇠가 그분, 오직 그분 앞에만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4:7-8,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중 어떤 사람도 이 세상에서 자기 자신의 목적을 섬기지 말아야 하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의 의지를 내세우거나 자기 자신의 이해를 따라 살거나 자기 자신의 성향을 따라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은 항상 주님과의 관계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이익이나 자기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 살거나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해서 살아야 하며,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지 말아야 하는 원리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차이들 중 하나인 것입니다.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인의 행실은 위대한 가르침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교리에서 시작하여 실천적인 삶의 대목으로 계속 나아갑니다. 앞절에서 말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는 이유는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 즉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14:10-12, “내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순전히 주님 덕분이기 때문에 다른 그리스도인을 자기와 생각이 같지 않다고 해서 정죄하면 안 된다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로마 교회에서도 고린도 교회와 같은 성도 간의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에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비본질적인 문제들’을 다룰 때 서로 형제라는 것을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는 것을 입증할 양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돕는 마음을 가지고 가능한 공통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 서로를 도와주고자 애를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사야 45:23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으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무릎은 서로 간에 꿇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무릎을 꿇음으로서 상대방의 권위를 인정하는 셈이요, 특권과 권세를 인정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음으로 하나님께서 재판장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사람들에게 무릎을 꿇지 말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직고 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고 정당하다고 인정할 것을 이사야가 예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재판장 노릇을 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바울은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하고 있는 심판은 무엇일까? 이것은 우리가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될지 그렇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차원의 심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미 그 심판을 통과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상급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급 심판에 관해서는 다른 곳에도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누가복음 12:40-48에 나오는 말씀에는 두 종이 있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매를 많이 맞을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적게 맞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전서 4:17-18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그 상급의 심판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씀대로 살아가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일을 직고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일만 직고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선언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할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지위에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자기를 판단하시는 재판장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인 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