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9. 26. 11:33ㆍ로마서강해
로마서는 '이신칭의'가 주제인 서신입니다. 그러면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믿음으로 의롭다는 것을 인정받는다는 것입니다. '칭의'는 법정적 용어입니다. 즉 판사가 재판 마지막에 내리는 선고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판사는 모두 남자였다고 합니다. 판사는 소송 중에 있는 어느 한쪽이 '의롭다고'선언합니다. 사건은 종결됩니다. 그들은 법정이 내린 결정에 따라서 새로운 지위를 갖게 됩니다. 결혼식에서 주례자가 "두 사람이 이제 부부가 된 것을 선언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 선언을 통해 실제로 새로운 지위 곧 새로운 실재가 생겨난 것과 마찬가지로, 판사가 "피고가 무죄임을 선언합니다"혹은 "원고가 정당함을 선언합니다"라고 말할 때, 그 선언을 통해 새로운 상태 곧 정당성이 입증된 사람은 새로운 지위를 누리는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의롭다'. 이것이 바로 '칭의'인 것입니다.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 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그 당시 세상은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었다고 합니다. 즉, 세상 모든 사람은 심판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율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다 문제가 없다. 우리는 심판 아래 있지 않으며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우리는 나사렛 예수에 관한 이 교리를 믿을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들을 구원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적용하시는 표준은 이방인들에게 적용하시는 표준보다 더 높고 더 엄격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 율법을 가졌다는 사실로 구원을 받기는커녕, 유대인의 책임이 더 커지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우리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복음을 더 많이 알면 알수록 우리들의 책임은 증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에 대한 깊이를 알면서 그것을 무시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나중에 심판대로 오를 때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우리는 바울이 언급하는 '율법'에 대해 종종 막연히 생각합니다. 그 율법은 모세가 출애굽한 후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 즉, '토라'를 을 말합니다. 이 율법은 출애굽기에서 구원받은 백성을 위한 삶의 방식으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스라엘 전용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훨씬 더 큰 무엇, 곧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일반 도덕법을 의미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 마다 회당에서 율법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율법을 듣는 것이 의롭다(칭의)를 받는 것이 아니고 지켜야만 '의롭다'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칩니다(레 18:5, 신 4:1). 그러나 본문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범죄 할 수밖에 없는 죄인(3:23)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14-15,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이방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서 인간의 본성 속에 존재하는 도덕적 성향, 본래적인 양심의 법,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 등과 같이 율법과 비슷한 법들을 지니고 있다고 바울은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의 율법이 돌비에 새겨진 것이라면 이방인의 율법은 마음에 새긴 것입니다. 이를 '자연법'이라고 합니다. 양심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살피면서 때로는 자신을 정죄하기도 하고 스스로 대해 선한 증거를 찾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심이 무딘 자들은 계속 범죄 하면서 멸망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갈 6:3). 그러므로 인간들은 끊임없이 양심에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들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구약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율법을 받지 않은 인간들 또한 그 양심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들은 잘 알 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에서 인간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됨으로써 나타난 현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16, "이러한 사실은 내가 전한 복음에서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사람들의 숨겨진 것들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무엇일까? 바울은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관리하는 청지기적 소명을 주었는데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짓는 바람에 그 소명을 다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려면 인간들은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 인간들의 죄를 위하여 예수님이 화복제물이 되셨던 것입니다. 부활은 이런 예수님이 화목제물로 받아들여졌다는 하나님의 징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의롭다(칭의)'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예수님이 재림할 때 우리들은 새로운 몸을 입고 새 창조의 세계에 동참하는 것이라는 것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입니다.
성령의 역사함이 무엇일까? 우리들이 복음에 대하여 알면 알수록 우리들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이 성경말씀을 잘 알고 행하는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함이 아닐까? 우리들은 모두 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이런 우리들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한다는 것은 성령이 없으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유도 또한 이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26, "보해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그래서 우리들이 구할 것은 '성령 충만'인 것입니다. 이 시간에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과연 성령 충만 한가 아니면 성령이 소멸되고 있는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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