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3. 15:08ㆍ마가복음강해
예수님 당시 갈릴리에서 살던 사람은 누구나 혁명에 대해 알았고(행 5:36-37), 하나님이 나서서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지만 결국에는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거룩한 사람들에 대해 알았습니다. 즉 새로운 지도자나 예언자나 스승이라면 누구나 그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멘토였던 세례 요한의 죽음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시는 내용입니다. 즉 예수님은 그 새로운 지도자나 예언자나 스승의 반열에 오른 사람이란 것을 시인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8:31-32,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향변하매”예수님이 지금 제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앞 절에서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난 후에 새로운 가르치시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선생이 학생들에게 덧셈과 뺄셈을 가르친 후에야 다음 단계 수학을 가르칠 수 있는 것처럼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십니다. 그것도 당국자들의 손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말씀하시지만 제자들은 그 사흘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예수님이 죽으신다는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메시아는 당국자의 손에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메시아는 사실상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다니엘에 나오는 예언을 인용하고 암시합니다. 다니엘 7장에 나오는 ‘인자’는 이방 적들의 손에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합니다. 그는 고난을 받은 후에 하나님이 드디어 그 나라를 세우실 때 결국 인정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대변자, 즉 메시아로서 자신이 받은 소명과 운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다윗 같은 강력한 메시아를 기대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님이 보여주신 많은 이적과 기적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다윗과 같은 강력한 메시지라는 것을 보여주시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그 혁명이 성공하면 서로 좋은 자리에 차지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서로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었던 것입니다.
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예수님의 메시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계획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가 누구건 간에, 사탄 즉 고발자의 사주를 받았다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른팔인 베드로조차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유한한 인간의 관점에서만 생각했다고 마가는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은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도전이 되는 말씀입니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 모든 인생사에 임한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에게 임하는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만약에 그랬다면 역사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전쟁은 없었을 것이며 교회는 세상의 빛이 되어 사명을 잘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을 따라오는 자격을 요구하십니다.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그 당시 로마의 사형제도는 3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교수형, 참수형, 그리고 십자가형이 그것입니다. 그중에서 십자가형은 너무나 고통스럽고 끔찍한 처형방법이라 로마시민에게는 적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십자가형은 주로 로망제국에 반란을 행하는 자들과 아주 흉악한 자들에게 적용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로 십자가를 지고 형벌의 현장으로 걸어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려면 또한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부인을 해야 하는가? 바로 우리들의 본성일 것입니다. 우리 안에 도사리고 있는 탐욕과 시기와 미움과 욕망일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날마다 치러야 하는 영적전쟁인 것입니다. 우리의 본성과 성령 하나님의 싸움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심정으로 그 영적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고 그 뒤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을 그 모습은 어떤 느낌을 줄까? 그러나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만 우리들은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갈 2:20). 즉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이 거듭남이 바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자격인 것입니다.
9: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본문을 헛된 희망의 전형적인 예로 보는 것이 최근 신학의 경향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시공간의 세계가 끝나고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게 될 날을 기대했지만, 기대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의 언어에서는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고 사랑하시는 선한 세상의 파괴보다는 뿌리 깊은 악의 근본적 패배와 더 많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악이 패배하고 그 나라가 임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가시는 길은 위험하고 고난의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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