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8. 17. 11:54ㆍ마가복음강해
여리고는 지구상에서 고도가 가장 낮은 도시라고 합니다. 해수면보다 250미터가 낮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불과 15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예루살렘은 해수면보다 900미터 높다고 합니다. 즉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굉장히 가파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은 강도들도 많이 출몰한다고 합니다. 무덥고 건조하고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하는 갈릴리에서 오는 유대인 순례자들이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마다 느꼈을 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분의 이름과 존재를 두기로 택하신 장소로 여겼던 곳입니다. 그곳은 매일 정기적인 희생 제사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그들과 교제하시며 그들에게 미래의 희망을 약속하신 장소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대교 역사에서 위대한 자유와 희망의 사건들을 기념하기 위해 그곳에 갔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친척과 옛 친구들을 만나고, 노래하고 기도하고 춤추며 잔치를 벌였던 것입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순례 행렬이 담고 있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제자들과 추종자들은 다른 유월절보다도 더 흥분되고 기분이 고조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들이 메시아라고 생각하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기대가 굉장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뭔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위해 나귀 새끼 한 마리를 징발하십니다(2-6절). 우선 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신 것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왕은 겸손하셔서 나귀 새끼를 탄다고 했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 새끼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예수님이 이 나귀 새끼를 베다니에 있는 친구에게 미리 부탁을 해 놓으셨는지 아니면 그 자리에서 바로 생각하셨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주권적 자유를 가지고 행동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장면이 절정입니다.
11:7-8,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길에 먼지가 많고 돌도 많은 중동 지역에서 자신의 겉옷을 벗어 바닥에 까는 행위는 왕족들에게나 하는 행위였다고 합니다. 또 신아 난다고 해서 나무에서 가지를 꺾거나 들에서 덤불을 뜯어다가 길에서 흔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역시 왕을 환영하는 행위였다고 합니다. 마가는 본문을 통해 약 200년 전에 유다 마카비가 시리아 왕 안티오쿠스4세인 에피파네스를 이기고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성전을 정화하고 재건했습니다. 그때 마카비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은 찬미가를 부르며 담쟁이덩굴과 야자나무 가지를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 왕조는 약 100년간 지속되다가 bc 63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에게 함락되었습니다. 마가가 본문에서 독자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8장부터 제자들은 예수님이 유대인의 정당하고 진정한 왕이라고 생각했고, 그분이 그 왕으로 추앙받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분이 왕으로 영접받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11:9-10,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본문에서 ‘호산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곧 구하시리라는 기도와 그분에 대한 활력 넘치는 찬양을 혼합한 히브리어 단어라고 합니다. 이 흥겨운 노래의 시작과 끝은 예루살렘과 성전으로 올라가는 내용을 담은 시편 118:25-26에서 가져왔다고 합니다. ‘호산나’ 뒤에 이어지는 문장의 문자적 뜻은 “오시는 이여 복 받으소서”란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히브리어와 아람어로는 “어서 오세요”라는 말을 그렇게 표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란 말은 “우리 선조 다윗의 왕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란 뜻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입성하는 핵심입니다. 이것은 마가가 이미 10:47-48에서 눈먼 바디매오가 고백한 내용입니다. 마가는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11: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 가사 모든 것을 둘러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아직은 때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먼저 하신 것이 성전을 둘러보신 것입니다. 이 성전은 헤롯 대왕이 유대 백성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즉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bc 20 년경에 착공되었다고 합니다. 이 성전은 예수님당시에도 짓고 있었고 64년에 완공되었으나 6년 뒤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성전을 둘러보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배다니로 돌아가십니다. 그 당시 주요 축제 기간에는 예루살렘이 매우 복잡했기 때문에 많은 순례자들이 성 안에 묵기보다 멀리 떨어진 마을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3km 정도 떨어진 마을이라고 합니다.
마가는 앞으로 이어지는 몇 장에서 예수님이 10장에서 근본적으로 다시 정의하신 왕의 의미가 정확히 무어인지를 보여 줄 것입니다. 그 왕은 이스라엘이나 다른 사회의 왕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따르고 그분께 충성하는지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소유를 예수님께 맡끼고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때도 그분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는가? 우리는 나서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고, 우리 삶에서 그 겉옷과 같은 것을 찾아 그분 앞에 깔고, 그 가지와 같은 것을 찾아 흔들며 그분의 오심을 진정한 축제로 만들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의 헌신이 너무 익숙하고 시시해진 나머지, 예수님을 그저 우리가 원하는 여러 가지 일을 하는 데 도움을 줄 사람, 혹은 위로가 되는 종교 체험을 줄 사람 정도로 보지는 않는가?
이 시간 나는 과연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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