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5. 12:02ㆍ마태복음강해
오늘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다의 배신이야기입니다. 유다는 복음서에서 뿐 아니라 모든 문학 작품에서 가장 어둡고 난해한 인물로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유다가 왜 예수님을 배신했는지에 대해 파헤쳤고 여러 책들을 썼습니다. 또한 기독교적 사고에서 유다는 유대인들을 공격할 이유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 ‘유다’는 사실 ‘유대’라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예 유다는 존재하지 않았고 복음서 저자들이 반 유대인 운동의 일환으로 만들어 낸 인물이라고 주장하거나, 유다가 한 일은 배신이 아니라 예수님이 처음부터 의도하신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모두 문제의 핵심을 비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인물들은 로마 관리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유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예수’처럼 1세기 유대인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이름이라고 합니다. 유다는 다윗 왕가가 유래한 족장의 이름이고, 유다 마카비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200 년 전에 유대를 시리아로부터 해방시킨 위대한 영웅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유년기에 세금 때문에 반란을 일으킨 지도자의 이름 또한 ‘갈릴리 사람 유다’입니다. 예수님의 형제 중에도 유다가 있었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도 다른 유다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6:14,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롯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유다는 왜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려고 했을까? 본문에서 말하는 돈 때문이었을까? 유다는 예수님 일행의 재무를 담당한 제자였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똑똑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은 삼십은 노예 한 명의 값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 많은 돈은 아닐 것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이 은 삼십을 무게로 달아 주었다는 것은 예수님의 값어치를 노예 한 명 정도밖에는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유다는 배신을 했을까? 어쩌면 유다는 야고보와 요한처럼,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이 예수님의 오른팔이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나라가 오면 실행하겠다고 생각한 온갖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죽으러 가신다고 하니 자신의 계획이 물거품이 된다는 것 때문에 그랬을까? 어쨌거나 유다는 지금 예수님을 자기 유익을 위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또한 다 유다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우리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과 제자들은 성 안 어느 무명의 후원자에게 도움을 받아 비밀스럽게 유월절 잔치를 준비합니다(17-19절). 유대교의 절기는 대부분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출해 주신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축제는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해방시키신 이야기를 나눌 뿐 아니라, 식탁 앞에 놓인 긴 의자에 비스듬히 누웠다고 합니다. 그 당시 자유인들은 그냥 앉지 않고 비스듬히 누웠다고 합니다. 아마 로마의 영향이었을 것입니다. 유월절 기념은 매우 종교적인 행위였을 뿐 아니라 유대인들이 억압을 당한 오랜 세월 동안에는 매우 정치적인 행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유월절은 ‘겉보기에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해방된 민족이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주는 절기였습니다. 그런 유월절은 충성심을 지켜 주고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격려하는 축제의 기간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축제의 때에 예수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6:21-22,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근심을 했다는 것은 제자들은 유다가 배신을 할 것이라는 것을 꿈에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유다 또한 다른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이적과 기적을 보았으며 그리고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들었을 것이고, 베드로처럼 예수님이 메시아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유다는 그들과 함께 호산나를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 자기 겉옷을 길에 깔았고, 예수님이 성전에서 탁자와 의자와 동전을 뒤엎으시는 광경을 옆에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왜 배신을 했을까?
26:24-25,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으심에 관해서는 많은 예언자들이 미리 말한 바 있습니다(사 53:7-9).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은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코 가롯 유다의 배신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유다의 배신이 없었더라도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셨고 또 죽음심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는 자신이 그렇게 하고도 자신은 아니지요라고 도리어 예수님에게 묻고 있습니다. 이때의 유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런데 예수님은 왜 유다에게 네가 배신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계시는 것일까? 아마도 유다에게 배신의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닐까? “유다야 네가 나를 팔지 않아도 나는 죽어야 한다. 그러니 나를 팔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오라”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닐까?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으로 가시는 길에 자신이 아끼는 제자의 배신이 더했다면 얼마나 슬프고 무거웠을까? 예수님은 온 인류가 지신 상처를 아파하시며 죽음을 향해 가십니다. 인류는 창조주가 의도하신 대로 자기 이외의 존재를 돌아보며 살지 않고, 욕심, 탐욕, 야망 등 온갖 종류의 본능적 충동과 욕망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것은 바로 우리 모두가 행하고 탐닉한 죄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유다가 말한 것처럼 “나는 아니지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시간 나는 혹시 유다가 아닐까? 하고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마태복음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12. 26:36-46.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2) | 2023.01.09 |
---|---|
[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11. 26:26-35. "최후의 만찬" (1) | 2023.01.06 |
[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09. 26:1-13.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다" (0) | 2023.01.03 |
[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08. 25:31-46. "양과 염소" (0) | 2023.01.02 |
[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07. 25:14-30. "달란트 비유" (1) | 2022.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