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12. 26:36-46.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시다"

2023. 1. 9. 10:50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 말씀은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은 늘 강하고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은 한 없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전에도 여러 차례 슬퍼하셨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을 제자들이 이해 못 하는 것에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 오해하는 사람들, 말도 안 되는 말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 대해 화를 내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예수님은 언제나 강한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는 질문 앞에서는 늘 새로운 이야기나 날카롭고 짧은 농담으로 상황을 역전시키셨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고뇌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에서 차라리 유대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26:36-37,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겟세마네는 ‘기름을 짜는 틀’이라는 뜻으로, 이곳에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가 많고, 올리브기름을 짜는 틀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기도하러 그 동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중보기도를 하려면 제자들을 다 데리고 기도하면 좋았을 텐데 왜 3 명만을 데리고 가셨을까? 아마도 예수님을 체포하러 왔을 때 제자들이 피신하기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해석하는 신학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26:38-39,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불과 몇 시간 전에 제자들에게 마시라고 하신 그 잔이 아니었습니다. 이 잔은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언급하신(20:22-23)잔이며, 예언자들이 말한 잔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 시점에서 예수님은 다가오는 자신의 운명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영웅적 인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붕괴직전의 연약한 한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기도를 하셨습니다.

 26:40-41,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제자들은 얼마 전 “죽는 한이 있더라도”주님을 부인하기 않겠다고 장담했지만, 예수님과 함께 기도하지 못하고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제자들 자신들이 곧 죽음을 당할 처지에 있다고 하면 이렇게 잠을 잘 수가 있을까? 아마 그들은 눈물콧물을 짜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살려 주세요”라고 하나님께 매달렸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깨어 기도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있으면 시험이 오는 것을 볼 수 있고 기도하면 시험에 맞설 수 있는 힘과 용기가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런 기도를 실천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6: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첫 번째 기도에서는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기도하셨는데 이제 두 번째 기도에서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또 다른 문구로 기도하십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면,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예수님이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을 때(6:9-13), 제자들은 아마도 그 기도가 예수님과 이렇게 직접적 연관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신 대로 사셔야 했습니다. 산상수훈 전체가 예수님에게서 실현되는 듯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말한 고난과 슬픔을 당하시고, 뺨을 맞으시고, 저주를 당하지만, 오히려 축복으로 돌려주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처음 시험을 당할 때처럼(4:1-11), 홀로 영적전쟁을 치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싸움은 예수님이 반드시 이겨내셔야 하는 전쟁인 것입니다.

 26:44-45,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예수님은 세 번씩이나 같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었을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었을 때 다들 혼비백산하여 도망하였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만약 이들이 잠들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까? 그러면 제자들 또한 의연하게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 처형대에 올랐을까? 결국 제자들 또한 대부분 순교를 당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미리 예정하신 일일까? 그러면 우리들의 인생사에 있어서도 하나님은 예정하고 계시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영성인 것입니다. 즉 신앙의 긴 여정에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란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많은 고난이 따를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찾아가야 할 곳은 겟세마네 동산일 것입니다. 그곳에는 우리와 늘 함께 있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28:18).

 이 시간 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한 경험이 있는가를 한 번 점검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