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쉬운 마태복음강해]#113. 26:47-56. "체포되시다"

2023. 1. 10. 17:15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체포되시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하신 대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롯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은 어두운 야산이었기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를 구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롯 유다는 사람들과 예수는 자기가 입 맞추는 사람이라고 약속을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면서도 도망치지 아니하고 체포되어서 붙들려 가십니다.

 26:51-52,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요한복음에서는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었다고 합니다(요 18:10). 그러나 마태복음에서도 16:17에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바요나’의 뜻은 ‘요한의 아들’이라는 뜻이지만 그 당시 속어로 열심당원을 일컫는 말이라고 합니다. 즉 베드로는 열심당원이라는 것입니다. 열심당원들은 칼을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즉시 그 종의 귀를 만져 낫게 했다고 누가복음 22:51에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이 위기적인 상황에 말려드는 것을 피하게 하려 하셨던 것입니다(요 18:9). 결국 열심당원들은 1차 유대전쟁 때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일인까지 싸우다가 다 전사를 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을 접하는 첫 독자들은 1차 유대전쟁이 끝난 후였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잘 이해했을 것입니다.

 26:53-54,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로마의 군단은 대개 보병은 6,100명, 말 726 필 규모였다고 합니다. 본문 말씀처럼 열두 군단은 로마에 맞설 수 있는 막강한 군사력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리셔서 순식간에 대적자들을 다 물리칠 수도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왕하 6:17). 예수님은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라고 말씀을 하십니다(사 53장, 슥 13:7).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평생을 사셨고 그 말씀대로 성취되는 사람이 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마태 또한 성경의 성취라는 이 주제를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26:55-56,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뭉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으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본문에서 말하는 강도는 물건을 훔치는 강도가 아닌 혁명가들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당시 혁명가들은 대부분 열심당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항상 칼을 몸에 품고 다니다가 로마에 협조하는 유대인들을 보면 위해를 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가르쳤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를 잡으러 올 때 무력으로 혁명을 꿈꾸는 그런 자들을 잡을 때 사용될 칼과 뭉치는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그 무리들은 예수님을 정치법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 십자가형은 로마 제국에 저항하는 자들, 즉 정치범이나 아니면 아주 흉악한 강도들이나 지독히 말 안 듣는 노예들에 한에서 처형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불과 얼마 전에 “죽는 한이 있더라도”(35절)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장담을 했지만 다들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던 것입니다.

 이것이 3 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의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고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 이전의 제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 년이나 따라다니면서도 그들은 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의 권력자들이나 세상의 권력자들을 다 물리치면 다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인간적인 생각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기력하게 잡혀가시는 모습을 보니 이들이 멘붕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 또한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가치관의 변화가 없이는 제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즉 거듭남이 되지 않았다면 제자들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내 삶이 평탄할 때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고 감사의 기도를 하다가. 막상 고난이 닥쳐오면 그 좋은 신앙을 자랑하던 성도들도 힘들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치관이 바뀌고 우리의 삶이 하나님 중심으로 돌아가면 우리들은 성경 말씀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주신 삶에서 우리가 무엇을 성취할 것인가를 알게 할 것입니다. 이것을 알아가는 긴 여정이 신앙생활이며 영성인 것입니다. 즉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노력하고 그 뜻대로 살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화의 과정인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지금 어떤 성화의 과정을 잘 통과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