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6. 10:54ㆍ마태복음강해
오늘 본문은 앞의 두 가지, 즉 두 아들, 악한 농부 비유에 이어 세 번째로 언급된 비유로서 메시아를 거절한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14:16-24에 나오는 “잔치 비유”와 비슷하지만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심판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초청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태는 본문을 통해 어떤 심판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일까?
22:2,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 그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하였더니 오기를 싫어하거늘”당시 혼인 잔치는 7일이나 그 이상 밤낮으로 계속되었다고 합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왕이 잔치를 했으니까 얼마나 성대하고 먹을 것이 많았겠습니까.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거절하고 있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5절).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절했습니다. 갈릴리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절했고, 이제는 예루살렘에서도 거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기다려온 성대한 잔치를 계획하고 계셨는데, 그리고 메시아가 여기 왔는데, 그들은 알고 싶어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이 원하는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리려고 한 선지자를 모욕하고 죽였던 것입니다(6절). 그 결과 그들의 도시는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7절). 우리들은 마태복음이 1차 유대전쟁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즉 이 글을 접하는 첫 독자들은 지금 마태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22:10,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한지라”이들은 누구일까?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은 세리들, 창녀들, 점잖지 못한 사람들, 무명의 사람들, 눈 먼 사람과 다리 저는 사람들, 자신이 잊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메시지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기뻤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은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초청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고자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2:11-12,“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본문은 참 의아스러운 부분이 많은 말씀입니다. 다른 손님들은 결혼식 예복을 어디서 구했을까? 종들이 그들을 그냥 데리고 들어간 것이라면,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을 텐데, 왜 이 사람만 복장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고 밖으로 쫓겨나야 했을까? 그러면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자격이 아닐까? 다시 말하면 거듭난 자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누구나 지금 모습 그대로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 하나님은 우리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변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특히 어떤 특정한 태도를 정당화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종종 그런 식으로 말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눈먼 사람과 다리 저는 사람이 왔을 때, 예수님은 “너희 모습 그대로 괜찮다”고괜찮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또한 창녀들과 세리들이 예수님께 왔을 때 “너희 모습 그대로 괜찮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의 모습 그대로를 향해 다가갔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에게서 최선의 것을 바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변화되고 치유되고 달아졌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누구나 사랑하십니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흉악범이나 사기꾼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목적은 그들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은 사람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나지 않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들은 어찌 될까?
22:13-14,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본문은 참 무서운 말씀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들은 누구일까? 마태는 지금 유대공동체에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들 하나님을 숭배하고 예배하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의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의 자격이 없다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거듭남”을 하지 않은 자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않은 자들은 천국 백성이 될 수 없다고 지금 예수님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에 대한 변화일까? 바로 세상 권세가 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한 변화인 것입니다. 즉 가치관의 변화인 것입니다. 이전까지는 맘몬의 신을 숭배했다면 이제는 진정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의 변화인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의 개념입니다. 이 회개의 결과가 바로 거듭남이란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시간 나는 진정으로 거듭났는가를 한 번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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