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2. 9. 10:52ㆍ마태복음강해
우리는 부활 사상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부활 사상은 중간기에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주전 2세기경에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레스왕의 종교 탄압으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순교를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순교자는 죽음 직후에는 아니지만 궁극적 부활해서 새 육체를 입을 때 영광스러운 미래를 맞이할 것이라는 사상이 생겼던 것입니다. 이런 사상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따라서 재창조도 하신다는 생각에 기초했다고 합니다.
유대의 제사장 귀족 계급인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세오경만이 진정 권위 있는 성경이라고 생각하는 보수주의자들이었습니다. 특히 사두개인들은 부활 사상은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보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 사상을 믿는 사람들은 대범하고 위험한 행동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혁명을 일으키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최고 관심사는 사회가 안정되어 로마 제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본문을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예수님 당시 유대교 안에서 “변화는 싫다, 지금처럼 살자”라고 주장하는 분파가 사두개인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의 말을 믿었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모두가 애타게 기다리는 새 시대가 마침내 열리면, 하나님이 그들을 새 생명으로 부활시키실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부활 사상을 혁명적 교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력을 쥔 그들은 그 생각이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구약의 율법을 인용합니다.
22:24,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이들은 신명기 25:5을 인용하면서 일곱 형제를 비유를 들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25-28절).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22:29-3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신명기에 나오는 율법은 예수님 이전 시대의 하나님 백성에게는 매우 중요한 율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그들의 ‘씨’ 혹은 ‘가족’이 지속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가계와 지파의 정체성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지 않게 최대한 막아야 했는데, 이 율법의 내용이 그러한 방법 중 하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새롭게 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들은 이제 인종적 뿌리나 종족의 정체성을 특징으로 하지 않고 복음의 새 창조에서 비롯되는 세계적 가족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가족의 대가 끊이지 않게 하려고 주어졌던 옛 율법은 이제 필요가 없다고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새 생명으로 부활을 시키면 그때 이미 죽음 자체가 사라진 새로운 세계의 질서로 들어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생명은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생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노쇠하여 죽지 않는 육체를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족을 번식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성행위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행위가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었을 것인데, 예수님이 본문에서 부활한 사람이 “천사와 같을”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아마도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22:31-32,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이 권위를 인정하는 모세오경의 핵심 본문을 인용하면서 죽은 사람이 정말로 부활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만나실 때 자신을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십니다. 하나님이 스스로를 그렇게 드러내신다면, 그 족장들이 죽어서 영원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는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 하나님 앞에 살아 있고 그들의 현 상태가 부활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아직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의 요점은 그들이 지금은 죽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으로 알려지기를 원하시는 것으로 보아, 미래에 하나님이 그들을 죽음에서 살리실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부활은 죽은 상태를 완곡하게 표현하는 말이 아닙니다. 부활은 죽음의 권세에서 벗어났으며 하나님의 새 세상에서 인생을 누릴 새로운 육체를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부활 사상인 것입니다. 즉 부활 사상은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나는 부활 사상을 어떻게 믿고 신뢰하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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